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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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줄 수 있는 영향

2006-10-3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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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재미를 위해 읽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도움과 지침을 구하기 위해 읽는 경우도 많다. 1975년 미국 미조리주 센트루이스에 처음 왔을 때 서점에서 가서 제일 먼저 샀던 책이 주로 자기능력개발과 자아실현에 관련된 책들이었다. 미국에서 석사공부를 하기로 결심한 나에겐 무척 힘들고 불안한 시기였고 아직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열악한 70년대 였기에 서점에 나와 있는 여성들에게 힘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 책들을 부지런히 읽고 어느 정도 자신감을 얻는 데 도움을 받았다.
그 계통의 책들은 대부분 비슷한 이슈를 다루고 있었다. 여성이란 이유 때문에 뒤따르는 사회의 통념적인 편견과 차별에서 본인을 해방시키고 단지 여성이기 때문에 열등하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가르침을 통해 적극적인 사회참여와 전문가로서의 정신적, 경제적 독립을 강조하는 글들이었다.
그 후에는 남자이든 여자이든 인생의 높은 목표를 삼는 것을 권하는 책들을 읽었는데 그 중에는 ‘Sky is the Limit’와 같이 가족, 사회, 풍습 등의 간섭과 압박에서 벗어나 자신에 대한 높은 기대감과 자기개발훈련을 통해 자신이 가진 모든 가능성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고 도전 하는 것을 격려하는 책들을 읽고 나 자신에게 높은 기대감을 쌓아야 한다는 영향을 받았다.
그 후에 즐겁게 읽은 책들은 삼국지, 수호지와 손자병법 같은 병법서나 도쿠가와 이에야스나 줄리어스 시저와 같은 전쟁 영웅들에 관한 책들이었다. 그 당시 유별나게 ‘인생은 전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전쟁이란 천하통일을 위해서든 아주 사소한 이웃나라 간의 다툼에서든 꼭 이겨야 한다는 전쟁의 원리를 믿고 역사 속의 많은 전쟁 영웅들이 펼치는 병법과 전략에 관한 책들을 열심히 읽었다.
사실 그 배경에는 박사학위 과정중 ‘사회계획과 사회정책 설립의 관련’이라는 과목에서‘전략작전’에 관한 문서들을 읽고 또 실제로 전략을 짜는 방법들을 배우고 있었는데 정부의 사회계획, 조직사회, 비즈니스에서 사용되는 목표 달성을 위한 전략 작전이 전쟁에서 쓰이는 전략을 도입했다는 사실을 배우고 난 뒤 전쟁 소설에 더욱 흥미를 갖게 된 것이었다.
그 당시는 ‘도전, 도전 또 도전’을 내 인생의 목표로 삼고 달려 왔다. 그때 배운 ‘전략작전’은 지금도 여전히 USC에서 매년 열리는 우리 분과 1년 계획에 도입하여 사용하고 있다.
7,8년 전부터는 인생의 또 다른 관점을 주는 다른 종류의 책들을 읽게 되었다. 종교나 명상에 대한 글들 을 읽기 시작하다가 긍정적이고 맑고 투명한 느낌의 류시화 시인과 법정스님의 책들을 접하게 되었다. 법정스님의 예찬론자이기도 한 류시화 시인은 얼마 전 70년대부터 출간된 법정스님의 책들 중에서 대표되는 글들을 모아 ‘살아있다는 것은 다 행복하다’라는 글 모음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30년이 넘도록 범인들에겐 결코 쉽지 않은 무소유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법정스님의 글은 결코 종교적이라 할 수 없고 오히려 한 폭의 한국 전통 동양화, 마치 하얀 여백에 간결한 붓 터치로 그려진 산수화를 연상케 하는 자연주의 사상가 같은 글들의 모음 이다. 쓸데없는 것을 소유할 필요가 없음을 지적하는 무소유를 읽고 보니 그 사이 욕심으로 사들인 불필요한 물건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법정스님의 글을 읽으면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으며 지나온 과거의 짐은 벗어버리고 미래의 일들을 미리 끌어다 걱정하기보다는 현재에 최선을 다 할 것을 조언한다. 그 중 내가 좋아하는 글을 하나 소개하고 싶다.
“만일 이 산이 내 소유라면 그 소유 관념으로 인해 잔잔한 기쁨과 충만한 여유를 즉각 반납하게 될 것이다. 등기부에 기재해 관리해야 할 걱정, 세금을 물어야 하는 부담감 또는 어느 골짜기에 병충해는 없을까, 나무를 몰래 베어 가는 사람은 없을까 해서 한시도 마음이 놓이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도 이 산은 내개인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마음 놓고 바라볼 수 있고 내 뜰처럼 즐길 수 있다. 차지하는 것과 보고 즐기는 것은 이처럼 그 틀이 다르다.” - ‘그냥 바라보는 기쁨’중에서.
이 글을 생각하며 거의 매일 새벽 천문대까지 연결된 그리피스 공원의 하이킹 코스를 오르면 왜 큰 부자가 아니어도 행복할 수 있는가를 깨닫게 된다.

<케이 송> USC 부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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