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미술의 난해함과 재미는 발상의 전환에서 온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배우자를 사랑하겠느냐는 결혼 서약을 읽기 쉽게 프린트한 작업이 현대미술 경매에서 100만 달러에 팔리기도 한 바바라 크루거는 1970년대 ‘당신의 시선이 나의 볼에 닿는다’<사진>는 작품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전통회화가 대상을 그리는 데 비해 그녀는 보는 행위 자체를 그림의 주제로 삼았다. 누군가에 의해 불특정한 미의 상징인 비너스가 되어 바라보아질 때의 미묘한 행복감 혹은 불편함의 긴장이 떠오르게 하는 이 그림은 어느 저녁 한 낯선 사람을 바라보던 단 10분의 시간을 기억나게 한다.
저녁이 내리고 있었다. 어둠 속 도시의 불빛이 하나하나 켜지고 어둠이 깊어질수록 불빛은 더욱 찬란히 타오르기 시작했다. 방금 그의 방을 나온 나는 온몸의 세포가 다 열려 온 우주의 별빛들이, 자동차와 가로등의 불빛들이 찬란한 별밭처럼 춤추며 전속력으로 지나가는 한가운데에서, 생각했다. 그 순간에. 죽음을.
한 아름다운 사람을 바라본 단 10분간의 시간이 불러온 극명한, 환하고 가볍고 정답고 아름답고 찬란한 그 느낌. 차라리 그 순간 이 지상에 마지막으로 입맞추고 그토록 장엄히 아름다운 밤에, 마지막으로 ‘Good night!’ 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 순간에 내가 이 지상에서 사라질 수만 있다면 그것은 ‘완전한 시간’이었을 것이었다.
그토록 모든 것. 모든 것이 아름답고 찬란하게 깨어있었다. 까만 스웨터를 입고 창백하며 고적한, 고운 살갗에 고요한 생기가 도는, 우아한 공주처럼 쓸쓸한 적조감이 더욱 그 빛을 찬란하게 하는 음울하고도 수려한 그의 이목구비가 마치 어둠 속에 핀 목련처럼 고요히 미동도 하지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듯이 가벼이 앉아있는 그의 서재에서, 어지러이 책들이 널려있는 책상이 하나있는 작은 방에 창이 하나 보이고 그는 그 창을 바라보며 지난 몇10년을 일해왔다.
그의 존재가, 몇 천년의 시간 속에 각인된 듯한, 꽃잎처럼 젖어있는 듯한, 만지면 물기가 느껴지지는 않지만 그 생기로 젖어있는 듯한 그의 존재가, 곧 사라질 그의 존재가 영원히 각인될 듯이 그 방에 앉아있었다.
내 눈에 커다란 빛이 나서 흑암의 어둠 속, 저 깊은 창공의 어둠 속을 환히 비추어 찾아낸 듯한 고적하고 깊고 따스한, 그 존재가 갑자기 어둠 속에서 나타난 듯이 그의 의자에 앉아있었다. 뜻없는 대화가 오고갔다. 나는 그의 눈을 보는 대신에 그를 담고 있는 공간 전체를 흡수하려는 듯이 그가 앉아있는 벽을 바라보며 일초일초 지나가는 시간을 재고 있었다. 순식간에 숨막히는 시간은 지나갔고 잠시 일상의 대화를 끝내고 걸어나왔다.
하나의 살아있는 존재가 뚜렷이 각인된 듯이 그려진 초상화를 시선에 담고 나오듯이 단 한 모서리의 그림자조차 잃어버리거나 잊혀져서는 안 되는 듯이 시선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며 자동차의 키를 돌렸고 나의 전신은 찬란한 저녁의 대기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고 그리고 전개된 일상의 거리는 섬세하고 찬란한 별빛들로 춤추었고 살아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닌, 단 한 장의 유리같이 빛나는 시간만이 타오르며 번쩍이는 나의 시선에 각인되었고 방금 지나온 그의 영상을 영원히 기억하고 찬미하기 위하여 그 위에 그 어떤 불순한 것도 더 하지 않을 수 있도록 아마 그런 생각이었을 것이지만 그 순간 난 숨이 멎어버려 불멸의 한 가운데로 사라져버리기를 열망했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박혜숙> 화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