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입생 관리 장거리 전략

2006-10-2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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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도 벌써 중반으로 접어들었다. 몇 번의 숙제, 퀴즈 외에 첫 시험을 마치고 난 후여서 남은 학기의 강의의 방향도 확실히 잡힌 상태다. 같은 수준의 시험이라도 첫 시험은 학기에 따라 평균점수, 학생간의 실력이 큰 차를 보일 때가 있다. 특히 신입생이 많은 과목이 그렇다. 실력이 비슷해서 같은 학교에 입학했어도, 그때까지 몸에 익은 각자의 고교시절 식으로 공부하기 때문인 것 같다.
공부의 습관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본인의 의지에 따라 첫 학기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바꿀 수 있다. 대개의 경우 첫 시험, 첫 학기의 실패는 교수, 학교가 크게 문제삼지 않고 경고만 한다. 기록에 남을 성적이 안 좋으니 우선 학생 스스로 감당해야 할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두 번째 시험, 학기에서도 실패하게 되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학기일 경우라면 1년을 실패한 것으로, 대개의 대학은 정학, 퇴학 처분을 한다.
그런 일은 대개 부모의 간섭 없이 맞게 된 대학생활의 자유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 생기기 십상이다. 별 준비훈련 없이 시간과 결정의 완벽한 자유를 맞았으니, 좋건 싫건 평생 의무적으로 해왔던 공부보다는 평생 눌러왔던 호기심과 흥미를 만족시키는 일에 고개가 더 돌아가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결석을 하지 않더라도 공부할 시간을 놓치면 곧 강의를 못 알아듣게 되고 숙제도 못하게 된다. 고교시절 하듯이 하루 열심히 하면 해결될 것으로 믿으며 자꾸 미루다 보면 결국 자포자기하게 되거나 밤새고 며칠 공부해도 이해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고 만다.
그래서 대학은 신입생에게 특별히 신경을 쓴다. 우리학교의 경우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때때마다 대학생활에서의 주의사항을 강조하고, 지도교수와의 잦은 면담을 통해 학점을 관리하게 한다. 교수들은 개인적으로 격려하거나 주의 주는 외에 출석을 멈춘 학생의 경우엔 교수 임의로 등록을 취소시킨다. F 학점이 평생 따라 다닐 것을 알면서도 아직 그 여파를 실감 못해서, 혹은 귀찮거나 그 과정이 싫어서 등록취소를 미루다가 결국 F를 선명하게 남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음 학기에 재등록해서 좋은 성적을 받으면 F가 없어진다고 하지만, 대학에 따라 F와 새 점수의 평균을 주기도 하고 가끔은 그 과목이 아예 없어져버려 재등록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또 교수들은 신입생에 한해 등록취소 기간 안에 중간성적을 의무적으로 온라인에 올려 성적이 낮은 과목의 등록취소 결정을 돕는다. 이미 경고 받은 학생이나 운동 특기생의 경우엔 더욱 자주 리포트 하게 되어 있다.
아침 일찍부터 수업을 시작하여 하루를 빨리 마치도록 시간표를 짰다가 제시간에 일어나지 못해 애쓰는 신입생을 많이 본다. 밤늦은 취침의 대학생활이라 그게 쉽지가 않다. 특히 남학생들 중 괘종시계 서너 개를 방 여기저기에 놓아두고도 못 깨어나는 경우가 있다. 깨워줄 부모가 없으니 내쳐 자다가 한두 번 수업을 놓치면서 아예 일어날 생각도 안 하게 되기도 한다.
멀리 있는 부모로선 학기말 성적표를 보기 전 까진 그런 상황을 알 도리가 없고, 안다 하더라도 뾰쪽한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가히 짐작되는 부모들이라면 가슴 태우며 걱정만 할 수도 없다. 내년에 아이를 대학에 보낼 입장이 되니 불안이 앞선다. 그래서 지금부터 나름대로의 장거리 관리전략을 세우는 중이다.
아이가 프라이버시 침해라 반발을 해도, 등록금,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보태주면 내 권리를 내세워 강의시간표를 받아 놓을 것이다. 종종 첫 강의 30분전쯤에 전화를 걸 계획이다. 물론 깨우려고 전화했다는 말은 금지다. 그리고 살살 달래 물어봐서 가망 없는 과목이 있는 것 같으면 등록취소를 강력히 권해 일단 성적표의 F를 막아볼 것이다. 실제로 취소했는가를 끈질기게 확인하면서.
내 아이 때문에 이번 학기는 어느 때보다 더 신입생들에게 신경 쓰게 되었다. 내가 그 부모들을 대신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강해져서 대화, 이메일을 자주하며 그들의 생활을 살살 엿보고 있다.

<김보경> 북켄터키 주립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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