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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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난당한 요세미티의 물

2006-10-2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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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치헤치(Hetch Hetchy)는 요세미티의 쌍둥이 계곡이다. 형격인 요세미티 밸리는 캘리포니아 최고의 명승지로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해발 9,000 피트를 용트림 치듯 솟아오른 해프 돔(Half Dome) 과 엘 카피탄 암벽. 그리고 하늘에서 700여 피트를 쏟아지는 폭포는 장엄미와 신비로운 조화미로 절경을 이룬다.
그러나 동생격인 헤치헤치는 아직도 숨겨진 비경이다. 요세미티 배리의 15마일 북쪽에 위치한 이 계곡은 역시 웅장한 암벽과 폭포들로 한때 요세미티 계곡과 쌍벽의 미를 뽐냈던 곳이다. 요세미티의 아버지 존 뮈어는 이곳을 신성한 산전(山殿)이라 불렀다.
그런데 80여년전 샌프란시스코 시는 이 계곡을 막아 수원지를 만들고 말았다. 헤치헤치를 목숨처럼 아끼던 존 뮈어는 불과 몇 달 후 상한 심장을 안고 세상을 떠났다. “자연은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존재할 권리를 갖는다”는 유언을 남기고.
당시 1900년대 초 샌프란시스코는 급성장하는 서부 최대도시로 인구가 벌써 35만이 넘었다. 시 당국은 곧 100만을 돌파할 대도시에 걸 맞는 상수원 확보에 전념하고 있었다. 도시 가까이서 취수하자는 의견이 다수였다. 그러나 이를 묵살하고 160마일이나 떨어진 요세미티의 헤치헤치를 고집한 3인방이 있었다. 그들은 롤프 시장과 시 엔지니어 맨슨, 그리고 댐 전문가 오셔너였다. 이들의 신념은 ‘최고의 수원(水源)은 최상의 수질(水質)에’였다.
존 뮈어 측과 10여 년의 공방 끝에 1913년 헤치헤치를 수원지로 만들자는 미연방 의회안이 통과되었다. ‘수자원은 환경보전보다 공익사업에 우선돼야 한다’는 명분이었다. 드디어 1924년에 오셔너댐이 완공되고 헤치헤치는 수장되었다. 계곡 전체가 화강암 벽에 둘러싸여 물 한 방울도 새지 않는 완벽한 저수지가 된 것이다. 또 송수관이 시에라 산맥 굴을 뚫고 그 너른 산호와킨 평야를 지나 장장 160 마일을 내려올 때까지 펌프하나 쓰지 않고 모두 중력에 의해 흘러내릴 수 있게 설계되었다.
헤치헤치에서 하루 2.5억 갤런의 생수가 매일 베이 지역으로 배달된다. SF 시 뿐 아니라 그 주변 지역 약 240만 주민들에게 달고 시원한 생수가 하루도 빠짐없이 공급되고 있다. 그래서 헤치헤치는 SF 3인방의 완벽한 승리의 상징으로 남는 듯 했다.
그런데 요즘 존 뮈어의 얼이 되살아나고 있다. 헤치헤치를 다시 옛 모습으로 복원하자는 운동이 점점 활기를 띄고 있는 것이다. 20여 년 전 처음 가능성이 언급됐을 때만 해도 모두 잠꼬대로 들었다. 그러나 지난 달 나온 주 수자원국의 보고서에서 놀랍게도 기술적으로 복원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비용도 약 30억에서 100억 달러 정도 든다고 수치까지 밝혀냈다.
흥미로운 건 이 헤치헤치 복원의 발상 뒤에 LA 수도국의 역할이 도사리고 있는 점이다. 100여년전 LA시는 수원을 찾아 시에라 동쪽 모노 레익 근처인 오웬즈 밸리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농민들 몰래 농토와 물을 매점해 버렸다. 이 사건은 부도덕한 정부행정의 본보기가 되어 영화 ‘차이나타운’에서도 묘사될 정도였다.
그 후 LA시는 오웬즈 벨리에서 매년 전체 공급량의 45%에 달하는 61만 에이커 피드의 물을 끌어 썼다. 그런데 수년 전, 모노 레익을 보존하라는 법원명령이 떨어진 후로 물경 15만~20만 에이커 피트를 절수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양은 SF시 자체가 헤치헤치에서 쓰는 양과 맞먹는다. 모노 레익을 보존키 위해 LA시가 해냈으면 SF도 헤치헤치를 복원시킬 수 있다는 논리인 것이다.
물론 지금은 복원 반대파 주장이 더 거세다. 그러나 언젠가 헤치헤치가 부활되는 날, 존 뮈어가 긴 수염을 휘날리며 계곡 능선에 승리의 깃발을 꽂는 모습을 우리의 후손들이 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김희봉> 수필가, 환경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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