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참 행복론

2006-10-0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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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말하는 인생의 3대 실패가 있다. 첫째는 청년출세(靑年出世), 둘째는 중년상처(中年喪妻), 셋째는 노년무전(老年無錢)이다. 노년을 고상하게 보내고 싶어도 경제적 뒷받침이 안되면 힘든 까닭이다.
그렇다면 물질적 여유로움이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꼭 그렇지만도 않다. 경제적 여유가 인생의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필요조건은 될 수 있을지언정, 충분조건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복수준을 어떻게 파악해 볼 수 있을까?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필자의 경우 산수시간에 분수를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간단히 파악할 수 있는 행복지수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각자 살면서 바라는 것과 성취한 것들이 있을 것이다. 행복지수는 바로 이 바라는 것을 분모에 놓고, 성취한 것을 분자로 삼을 때 나오는 분수가 된다. 예를 들어 바라는 것이 100, 성취한 것이 80이라면 행복지수는 80이 된다.
이 행복지수를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수준인 100으로 만들고 싶다면? 두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겠다. 분자의 성취한 것을 키우거나, 분모 쪽의 바라는 것을 줄이는 방법이다. 사람들은 흔히 행복의 증진을 위해 성취를 키우는 일에 더 큰 관심을 두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분모를 낮추는 일, 즉 바라는 것을 관리하는 것 또한 주어진 여건 속에 자신의 행복을 키우기 좋은 방법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제 특별한 행복지수를 가진 어떤 사람을 생각해 보자. 즉, 바라는 것보다 성취한 것이 더 많아 행복지수가 100이 넘게 나오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다시 말해 본인은 100을 바랐는데 120이란 결과를 성취한 경우 행복지수는 얼마가 될까? 산수에 밝으신 분들은 금방 120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120이라는 행복지수는 별로 의미가 없다.
왜? 행복지수 100이란 이미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수준을 뜻하므로, 그 보다 큰 지수는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의 행복지수를 우리는 숫자가 아닌, 말로써 ‘감사’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 20이 어떻게 얻어진 것이든, 얻어진 자체도 감사이겠지만 정작 이를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없이는 여분의 행복이란 존재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참된 행복은 의외로 가까이 있어 보인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지만, 컵에 물이 반 들어 있을 때 반이나(!) 남았다고 보는 사람도 있고 반밖에(?) 남지 않았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당연히 반이나 남았다고 보는 사람의 행복지수가 더 높을 것이다. 동일한 조건이라면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신이 성취한 것에 대한 마음의 감사가 분모를 작게 함으로써 전체 행복지수를 크게 만들기 때문이다.
100을 바랐는데 120을 가진 분은 그 20을 타인에게 나누어줘도 여전히 행복지수는 100으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분이다. 감사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20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다면, 사회 전체적으로는 행복과 감사가 함께 커질 수 있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모든 독자들이 지금 이 순간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든지 간에 그 자리가 자신으로 인해 더욱 빛나고, 주위 분들이 더 욱 행복해지는 그런 의미의 성공한 삶을 사시기를 기원해 본다.

오종남
IMF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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