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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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학생 생활

2006-09-3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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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되니 유럽에서 공부하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유럽의 문화와 생활 양식은 미국과 많이 다르다. 그곳에서 유학하는 학생들은 언제나 지적 양식과 다양한 문화의 습득을 위하여 여러해를 물질적으로는 가난하지만 생애에서 가장 풍요로운 산지식을 쌓는 기간으로 보낸다. 유럽 대학들의 좋은 점은 등록금이 거의 없는 것이다. 각종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은 한 푼도 돈을 안 내고 등록을 했고, 순수 문과였던 나는, 장학금이 끊긴 후에도 1년에 100 프랑 정도만 내고 다녔다. 형식적인 도서관 사용료 정도의 액수였다.
파리 유학생으로서의 나의 하루 생활은 아주 규칙적이고 단조로웠다. 아침에 일어나 기숙사 방에서 그 전날 저녁 대학 식당에서 가져다 놓은 바게뜨 빵에 버터와 잼을 발라 우유와 차와 함께 아침을 먹고, 9시까지는 지하철로 소르본느 도서관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일찍 갈수록 긴 책상 끄트머리의 좋은 자리가 비어 있었다.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책을 신청해서 보고, 그중의 필요한 부분을 복사하거나 노트를 한다. 석사와 박사 과정은 각각 1년 동안만 강의가 1주일에 한번 밖에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은 도서관에서 자기의 논문 주제에 따라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여 읽고 정리하며 논문을 쓰는 데에 소일되었다.
6시경에는 도서관에서 나와 지하철로 씨떼(빠리 대학 기숙사)에 돌아왔고, 저녁식사 후에는 기숙사에 같이 사는 학생들과 커피를 마시며 그날 일들, 자기 나라의 최근 상황이나 가족 이야기 등 많은 얘기를 하며 저녁 시간을 보냈다.
우리 기숙사에 살던 칠레 친구인 솔레닷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친구와 우리는 부모 형제 이야기와 공부 얘기, 아르바이트 얘기, 연애 얘기를 비롯해서 모든 얘기를 할 수 있었고, 서로 옷을 빌려 주기도 하고, 외국에 와 있는 학생으로서 같이 어떤 진리들을 찾아내기도 하면서 밤 2시, 3시까지 수다를 떨었다. 그중의 한 진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은 떠나간다”는 것이었던 기억이 난다.
솔레닷을 통해 우리는 꽁꼬르드 광장 근처에 있던 미용학원 로레알을 알았고, 거기에 가서 모델 노릇을 하고 단돈 몇 푼에 파마도 하고 커트도 하는 방법을 찾아내어 학생 시절 내내 이용했다.
학생들은 대부분의 파리사람들처럼 좋은 전시회와 음악회에 많이 갔다. 그때는 어느 기관에서나 학생들의 입장료가 반값이었고, 이탈리아에 여행을 가보면 그곳은 모든 국립 박물관에서 학생과 군인의 입장이 무료였다.
파리에서 일요일이면 나는 서너 곳의 전시회에 가기 일쑤여서 항상 다리가 아파 지쳐 돌아왔지만, 좋은 구경을 많이 한 경우 그것은 한 주일의 스트레스를 해소시키고 문화적 감동과 양분으로 나의 정신을 채워 주기에 충분했다.
프랑스 사람들이 회식을 하면 화제는 최근에 읽은 좋은 책, 구경한 전시회의 인상 등 자신의 문화적 경험을 꼭 나누었다. 학생이었던 우리도 그런 얘기가 나오면 열을 내며 지지 않고 우리의 감동을 얘기하곤 했다.
내가 프랑스 유학을 할 동안에 머리속에 담아 가지고 와야 했던 것은 도서관의 많은 책의 내용이었지만, 동시에 음악, 미술, 건축 등에 대한 취미와 정열도 거기에서 마음껏 자라날 수 있었다. 나의 미적 호기심은 도시 전체와 성당 건축에도 관심을 갖게 하였고, 프랑스 시골의 옛 교회들 특히 중세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들을 좋아하여, 가능한대로 여러 지방에서 성당 건축과 그 조각과 벽화들을 보러 다니게 되었다.
대륙 전체가 역사를 간직한 문화재의 보고인 그곳 유럽을 생각하면 한국의 방방곡곡 어디든지 찾아볼 수 있는 우리 문화의 유물들이 생각나곤 했다. 미국의 유학생이 만끽하지 못하는 문화 분위기가 바로 이것이다.

이연행 불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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