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다람쥐의 교훈

2006-09-2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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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정착한 지난 4년반 동안 거의 매일아침을 YMCA에서 시작했다. 실리콘 밸리의 조용한 도시, 팔로알토의 YMCA는 외롭고 매운 이민생활의 하루를 힘차고 깨끗하게 시작할 수 있도록 좋은 시설을 제공해 주고 있다.
새벽마다 그곳 스파에 몸을 담근채 뿜어 나오는 제트 물줄기로 등의 여기저기 맺힌 부위를 풀어줄 때엔 힘들었던 순간이 떠오르며 한 숨을 쉬기도 하고, 때로는 다짐의 어퍼컷을 물 속으로 슬쩍 날리면서 새로운 모색을 하기도 한다.
처음 미국에 와서는 이곳 헬스클럽은 어떻게 운영이 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사람들은 샤워실에서 어떻게 하는지, 수건을 어떻게 두르고 다니는 지, 수영장에서는 또 어떻게 하는지 모든 게 낯설고, 조심스럽기만 했었다. 매일 만나는 이 사람들은 그야말로 생김새와 피부가 너무 달라, 진정 내가 미국에 오긴 온 모양이네 하며 실감을 하곤 했었다. 이제는 백인이나 흑인이나 아는 사람 누구를 봐도 정다운 이웃으로 여겨지니 4년반이란 세월이 날 조금씩 날 이 사회에 동화시켜 주는 가보다.
YMCA까지 약 3마일의 거리를 자전거로 달리면 습기없는 북가주의 상쾌한 아침 바람이 온 몸에 부딪친다.
폴짝폴짝 길을 건너다 꼭 도로 한가운데 멈춰서 주위를 살피는 바람에 보는 사람을 안타깝게 하던 다람쥐가 오늘은 뭔가 큼지막한 걸 입에 물고 둔한 걸음을 옮기고 있다. ‘도토리나 주울 것이지 오늘은 욕심을 부렸네’하며 돌아보니 아직 어둠의 흔적이 발치에 남아있는 그 길 위에서 다람쥐는 마치 여우목도리를 걸친 것 같기도 하고, 암수 두 마리가 깊은 포옹을 하는 것 같기도 하여 실소를 머금으려던 찰나였다. 두세 발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더니 나무 위로 오르는 녀석을 보는 순간 가슴이 저릿해 진다.
물고 있는 것은 아직도 숨을 할딱이고 있는 새끼 다람쥐였다. 첫 도로보행 연습에 나섰다 지나는 차에 살짝 부딪쳤는지 의식을 잃어가고 있는데 어미는 필사적으로 다친 자식을 살려보겠다고 입에 물고 나무 위 둥지로 힘들게 힘들게 올라가는 걸 보니 안타까운 한편으로 다람쥐나 미물들에 대해 가졌던 그 동안의 관념이 작은 그 친구들을 전부 대변하는 게 아니었구나 하는걸 새삼 느낀다.
탐스럽고 부숭한 꼬리의 작은 몸뚱이로 쫑긋 서서 주위를 살피다 후닥닥 나무로 오를 뿐인 다람쥐들에게 희로애락의 감정이 있을까 했었는데 새끼를 물고 10미터 나무 위로 힘겹게 오르던 그 애처로운 모습을 보고서는 그것은 미물의 몸으로 태어나도록 내세의 심지를 잘못 뽑은 우리 인간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윤회의 진리로까지 생각이 잠시 흐른다.
미국에 와서 부쩍 커버린 아이들이 가끔씩 기대에 어긋나 속이 상하더라도 오늘 아침에 만난 다람쥐를 떠올리며 좀 더 너그럽게 보듬어 줘야지 다짐해 본다. 아울러 미물이라고 속단하지도 말고 그 누구에게도 겸손으로 임해야겠다는 소중한 교훈도 되새긴 의미 있는 아침이었다.

김덕환
모펫금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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