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지현의 와인 이야기

2006-09-20 (수)
크게 작게
존 러스킨과 와인 감상

와인을 감상하는 법을 얘기할 때마다 세 사람의 수도사에 대한 유명한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옛날 독일의 어느 수도원입니다. 한 수도사가 와인의 맛을 보고는 어떤 나무냄새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몇 번이고 맛을 보았지만 분명 그 냄새는 와인통에서가 아니라 다른 근원으로부터 오는 나무 냄새임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믿음을 확인하기 위하여 동료 수도사를 불렀습니다. 동료 수도사는 진지하게 맛을 본 후에 “그렇군요. 이 와인에는 분명 다른 맛이 있군요. 하지만 그것은 나무가 아니라 무슨 쇠붙이 같은 맛이 나는군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서로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 수도사를 불렀습니다. 몇 번이고 심각하게 맛을 본 후 그는 가죽의 맛 같은 것이 난다고 하였습니다. 세 사람은 서로 동의하지 못한 체 계속해서 맛을 보았습니다. 마침내 통은 바닥이 났고 도대체 왜 그들이 서로 동의할 수 없었는지 통을 깨보기로 하였습니다. 통의 밑바닥에는 가죽끈으로 연결되어 나무 조각에 매달려 있는 열쇠가 놓여있었습니다. 믿기에 힘든가요? 그렇다면 다음의 얘기는 어떨까요?
미국에 금주령이 내리기 전인 1920년께, 캘리포니아주에는 아몬드 모로우(Almond R. Morrow)라고 하는 전설적인 와인 전문가가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그는 어느 와이너리의 맛이 다른 해와는 달리 유난히 평범한 것을 느꼈습니다. 이것은 분명 품질은 생각하지 않고 일정한 면적에서 최대한의 양을 산출하기 위하여 농사지은 결과일 것이고, 그 포도밭의 주인은 분명 은행에 땅을 담보로 빚을 얻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빚은 대략 어느 정도일 것이라고 예측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설에 의하면 그 금액은 정확했다고 합니다.
위의 사람들만큼은 아니더라도, 당신이 보고, 냄새 맡고, 맛보는 일반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리고 많은 샘플을 맛볼 수 있고 그 맛을 기억할 수 있다면, 거기에다가 약간의 전문적 테크닉을 숙지한다면 당신도 와인을 품평하는 전문가가 될 수 있습니다.
한 잔의 와인을 마실 때 우리들의 감각은 보통 하나로 모아지게 됩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는 일반적으로 ‘좋다, 괜찮다, 그저 그렇다, 별로다’라고 총체적인 느낌만 얘기하게 됩니다. 전문가들은 그러한 감각을 하나하나 분석하며 나눈다는 점에서 틀립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와인을 전문적으로 감상하는 법이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미술평론가이자 사상가인 존 러스킨은 사람들에게 데생의 중요한 점을 강조하고 그 방법을 가르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데생은 인류에게 글쓰는 기술보다 현실적으로 더 중요하며,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모든 아이들에게는 반드시 데생의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것이 우리에게 ‘보는 법’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즉, 그냥 눈만 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피게 해준다는 것이죠. 눈앞에 놓인 것을 우리 손으로 재창조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아름다움의 구성요소들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얻게 되고 따라서 그것에 대한 좀더 확고한 기억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와인을 감상하는 것도 그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단순하게 마시고 느끼는 것만이 아니라 그 안에 녹아져 있는 많은 세계를 하나씩 음미하고 분석하고 느껴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깊게 보기’가 되는 것입니다.
gentlewind4@hotmail.com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