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중국의 물가와 공짜 휴지

2006-09-1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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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다르게 현대화하는 중국이 오래지 않아 세계 일등국이 되리라는 예견은 결코 과장이 아니라고 전세계가 고개를 끄덕 인다. 그리고 긴 역사가 남긴 온갖 유물들과 풍부한 자연 유산, 방대한 시장을 들먹이며 해를 거듭할 수 록 외국인 방문객들이 늘어만 간다.
지난 8월초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10시간 들렀던 장춘시에서 맛있다고 소문난 만두집을 인터넷에서 프린트한 엉성한 지도 한장을 들고 운좋게 찾아 들었는데, 우선 만두 9접시에 야채 3접시, 맥주 6병 을 시켜놓고 8명이 먹기에 부족할 까봐 메뉴판을 계속 들고 있었더니만, 웬걸. 접시 하나에 토실토실한 만두가 24개씩 얹혀져 나오는 것을 보고 모두 기절을 했다.
먹고 또 먹어도 도저히 없어지지를 않는데 맛이 기막히니 아무도 젓가락을 놓지 못했다. 총계는 중국돈 118원, 달러로 약15달러.
북경이나 상해의 웬만한 고급스런 식당에서도 두 사람이 20 달러 정도 쓰면 잘 먹고 나올 수 있는데 이들 도시에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최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수준의 다양한 식당들이 즐비하다.
남가주 한국학교 설립 초기 이사장을 지내는 등 로스엔젤레스 한인사회에서 많은 활동을 하다 현재는 연변 과학 기술대학 건축과 과장을 맡고 있는 건축가 서순덕씨는 물가도 싸고 정이 많은 연길이 살기 좋으며 후학을 키우 는 보람에 남은 여생을 기꺼이 그 곳서 보내리라 한다. 그는 단돈 3만 달러면 최고급 아파트를 살 수 있는 그곳이 소박한 중산층 재미한인들이 부동산 투자를 할 수 있는 최적지 일수도 있다고 했다. 중국의 집값은 앞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으므로.
그렇게 발전되고 물가 저렴한 천국(?)을 2주간 여행하며 우리 일행에게는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어느 식당에든 들어가 밥을 먹고 나서 누군가 화장실을 다녀오면 모두 그 사람을 주시한다. 그 사람이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이면, “와!” 하는 감탄사와 함께 우루루 화장실로 간다. “준비잘 해가지고 가!”라고 하면 다들 잠시 생각을 하다 일부는 가방을 열어 휴지를 챙기고 일부는 포기한다.
“지극히 고전적”이란 말이 떨어지면 대부분 조용히 포기한다.
대도시 공항의 화장실에도 휴지가 갖추어져 있지 않거나, 있어도 입구에 커다란 두루마리에서 필요한 만큼 미리 떼어가게 되어 있는데 이것이 눈 에 잘 들어오지 않아 낭패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일이 이쯤 되고 보니 여행 3일째 쯤 부터는 마켓에 가면 휴지가 제일 처음 눈에 들어오고, 서로 휴지를 선물로 사주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극히 고전적”이란 휴지가 없음은 물론, 용무를 보는 곳이 아득한 그 옛날의 뒷간을 닮았다는 이야 기이다. 이런 곳이 중국의 곳곳에 흔하게 남아 있다.
북경시 천안문 광장 주변 등 관광객들이 많이 모이는 곳들을 포함하여. 물론 북경 올림픽 이전에 사정이 많이 바뀌리라 예상되지만.
호텔에서 체크아웃 할 때 화장실의 휴지를 챙겨 나오며 혼자 흐뭇해했는데, 다른 방에서도 모두 비슷한 일이 벌어졌음을 알고 함께 웃었다.
중국에도 어딜 가나 당연히 휴지가 갖추어진 청결한 수세식 화장실이 준비되어 있는 날이 분명 오긴 올 것이다. 근데 그날이 오면 20달러를 가지고 8명이 배불리 먹고 마시는 날은 이미 사라진 다음일 지도 모르겠다.

yk@campwww.com
김유경
Whole Wide
World Inc.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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