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디 팔마 감독(‘캐리’ ‘언터처블즈’)은 히치콕을 좋아해 그의 스타일을 자주 모방하는 재능 있는 고참 감독인데 문제는 작품성의 기복이 심하다는 점이다. 그는 굉장히 야하고 어둡고 또 선정적이고 유혈적인 영화를 만드는 스타일리스트여서 냄새 나고 천박한 것을 즐기는 대중성에 잘 맞는 감독이다.
이 배우지망생 여자 살인 실화를 다룬 영화는 디 팔마의 입맛에 딱 맞는 영화로 스타일 근사하고 무드 있으나 이런 외형과 분위기에 비해 배우들의 연기가 약하고 터무니없이 복잡한 플롯을 횡설수설하듯 진행해 겉만 번드르르한 영화가 됐다. LA 다운타운을 무대로 한 ‘차이나타운’과 ‘LA 칸피덴셜’을 연상케 하는 필름 느와르로 음모, 배신, 살인, 욕정, 은폐 및 위선 등 극적 요소를 잔뜩 늘어놓은 뒤 그것들을 질서정연하고 또 긴장되고 스릴 있게 정리를 못했다.
1747년 LA에서 발생한 22세난 배우지망생 엘리자베스 베티 쇼트의 끔찍한 살인사건을 다룬 제임스 엘로이의 소설이 원작. 허리가 절단되고 입 양쪽이 귀까지 찢어진 채 내장 없이 발견된 베티의 피살사건은 ‘블랙 달리아’ 사건으로 불렸는데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다.
사건을 수사하는 두 형사가 과하게 공격적인 리(아론 에카르트)와 그의 연하 친구인 버키(조시 하트넷). 둘은 리의 금발 육체파 애인 케이트(스칼렛 조핸슨)와 묘한 삼각관계를 유지한다.
사건을 수사하면서 입수한 흑백 스크린 테스트 필름을 통해 베티(미라 커쉬너)의 모습이 나타나는데 버키는 배우가 되려고 갖은 애를 쓰는 이 비극의 여주인공에 집착하게 된다.
이어 또 다른 필름을 통해 베티가 레즈비언 포르노 영화에 나온 것이 밝혀지고 그녀가 부잣집 딸로 자기와 매우 닮은 ‘팜므 파탈’ 매들린(힐라리 스왱크)과 관계가 있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검은머리의 매들린은 속도 검은 자극적인 여자로 버키는 그녀를 추궁하다 격렬한 육체적 관계를 맺게 된다.
영화는 버키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되는데 끝에 가서 베티의 살해자를 밝혀내는 수법이 믿어지지 않게 단순하다. 그 때까지 질질 끌고 온 미스터리를 그렇게 물 한잔 마시듯 간단히 처리하니 속은 느낌마저 든다.
영화가 살아나지 못한 큰 이유 중 하나가 하트넷과 조핸슨의 맹물 연기. 그러나 음악, 촬영, 프로덕션 디자인 등은 매우 훌륭하다. R. Universal. 전지역.
비키(왼쪽)는 살인사건의 실마리를 주고 매들린과 격렬한 육체관계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