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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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안스님

2006-09-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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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가 무감(無感)한데
오는 이 없고 가는 이 없네
오고가는 이 없는데
일러보아라
누가 네 마음에 있었는가”
현기 스님의 시 구절이다.
도안스님이 돌아가셨다. 15년쯤 전에 꿈을 꾸었는데 나뭇잎사이로 흘러 들어온 달빛 그림자가 드넓은 절 마당에 아름답고, 몸이 가늘고 고고한, 회색가사를 입고 까만 모자를 쓴 스님이 홀로 달빛을 벗삼아 춤을 추는데 그 모습이 홀연하고 비어있어 참 아름다운 꿈이다 싶었었다. 도안스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니 잊었던 꿈 생각이 난다.
관음사 법당의 아름다운 문을 만드신 유명하 처사님께서 병환 중의 도안스님을 위해 옥상에 정원과 분수, 시원하게 햇살을 받고 쉬실 수 있게 소박한 정자를 만드셨을 때 스님을 문병할 수 있었다. 돌아가시기 3주전이었다. 평상시의 모습과 달리 완전히 살이 빠지셔서 거의 뼈만 남은 모습이었고 눈빛이 깊고 환하고 맑으셔서 내심 그 아름다움에 놀랐다.
모든 진이 다 빠지셨는지 아니면 정말 그 존재의 본질적인 근본만 남아 그러신지 화가의 눈에 정말 아름다워 보여서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스님, 아프셔서 수척하시니 정말 아름다우신데 제가 스님 모습 그리러 오면 안될까요? …스님은 기쁘게 그러라고 하셨고 아마도 스님께서는 불화의 역사에서 볼 수 있는 스님들의 초상화를 생각하셨는지 가사를 입으시겠다고 하시고 사진도 참고삼아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삼가 내 눈엔 가사도 입지 않으시고 병상에 겨우 앉아 계신 거의 뼈만 남은 소년 같은 몸과 그 빛나고 깊고 따뜻한 눈빛, 저 깊이 모든 어둠과 고통을 꿰뚫어 죽음 앞에 고요한 기쁨이 서린, 만물을 향한 저 깊고 따뜻한 응시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었고 암으로 투병 중이신 중에도 죽음 앞에 그토록 아름다운 게 인간의 참 모습이구나 싶었다.
도안스님과의 인연은 로터스화랑의 개관으로 시작되었는데 도를 닦는 분들의 멋있는 점은 일을 거침없이, 즉각적으로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아마도 살아 생전 하신 많은 일들을 그렇게 하셨으리라 싶다.
유명하 처사님께서 도안스님께 화랑을 하나 만드시는 게 어떨까요 하시자 마자 1주일 안에 화랑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일필휘지의 명필을 보듯 시원한 활력을 느꼈다. 진흙 속에 연꽃이 피듯 로터스화랑은 그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큰절 지으실 땅의 지도를 보여주시며 좋은 문화공간을 꼭 지으시겠다고 하셨다.
길도 없는 사막 큰 대지에 스님이 마음에 그리시던 절은 어떤 절이었을지…
돌아가시고 나니 큰스님 한 분이 버티고 계시던 3가와 옥스포드의 관음사와 로터스화랑, 내게는 알 수 없는 신비한 곳으로 느껴지던 관음사의 운명을 위해 저절로 기도가 터져 나온다.
청정하고 법력이 크신 스님이 오셔서 함이 없고 다함이 없는 큰스님의 뜻을 이으시고 이민사 천년을 지킬 불법의 기운이 관음사에 치솟기를 바란다.
그 눈빛의 한량없는 깊이와 아름다움에 생각만 하고 그리지 못한 스님의 모습은 마음속 하나의 화두로 남았다.
큰스님이 중생을 향해 펼치신 사랑의 저 밑 모를 깊이를 스스로 깨치는 날, 그릴 수 있으리라. 스님은 아마 저 서방정토 가시는 길에 웃으시며 괜찮아, 괜찮아 하실 것만 같다.
일체중생은 성불하소서.

박혜숙
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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