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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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자긍심 키우는 입양아 캠프

2006-09-0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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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9세 먹은 헨리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놀리는 것이 싫어서 학교에 가고 싶지가 않다고. 놀림 중에서도 가장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은 자기를 ‘차이니즈’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했다.
헨리는 한국에서 6개월 때 미국으로 입양해 온 입양아이다. 헨리를 입양한 미국 엄마·아빠는 헨리를 키우는 것이 너무 재미있고 보람을 느껴 헨리가 3세 때 여동생을 한국에서 또 입양했다. 아빠는 영국계, 엄마는 독일계인 가정에서 자라나는 헨리는 생긴 것은 동양아이지만 행동이나 생각, 음식, 언어, 그 외 모든 문화는 엄마, 아빠를 따른 백인의 문화이다.
한국 전쟁 이후부터 시작된 해외 입양은 이미 50년이 지났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입양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깊은 사랑을 베풀어주고 좋은 교육을 시키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한가지 달라진 것은 아이들에게 한국 문화를 가르쳐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키워 주는 것을 중요시한다는 점이다. 이런 면에서는 일반 한인 가정과 다름이 없다.
이러한 목적으로 미국 내 여러 곳에 한국문화 캠프가 생겼다. 한인 2세를 위해 시작된 캠프가 있나 하면 어떤 캠프는 입양아들을 위해서 생긴 곳도 있다.
지난달 중순 뉴저지에서 열린 ‘캠프 세종’을 일주일간 다녀왔다. 캠프 세종은 1992년 4.29폭동 후 린디 겔버라는 여성이 시작한 프로그램이다. 린디는 4.29폭동을 주시하면서 깊게 깨달은 것이 있었다. 자기가 입양한 한국 태생의 딸이 부모 품을 떠나서 대학이나 사회에 진출했을 때 미국인들이 그 딸을 보는 눈이 우선은 동양인, 한국인이라는 것이었다. 그 날을 대비하여 한국계 미국인으로 자긍심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입양아들에게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겠다며 캠프 세종을 시작했다.
15년의 역사를 가진 캠프 세종은 뉴저지, 블래어스타운이라는 자그마한 마을에 위치한 ‘Happiness Is Camping’이라는 아름다운 캠프장에서 매년 열린다. 올해의 참석자는 130여명이었다. 7세부터 15세의 캠프 참가자가 70여명, 그들을 지도하는 캠프 카운슬러가 30여명, 문화 교육을 시키는 교사들과 캠프 스태프가 30여명이었다. 참가 학생들 중 절반은 입양아, 20여명은 한인 아동, 10여명은 한국에서 온 한국 아동들이었다.
캠프 카운슬러들은 이 캠프를 거쳐간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들과 대학생들이고, 교사진은 뉴저지와 뉴욕 등에서 활동하는 전문직 종사자들, 한국에서 온 유학생들이다.
나는 미시간에 살지만 3년 전부터 참석하여 캠프 심리학자로 일주일을 보낸다. 매일 자긍심 클래스를 통해서 참가 학생들의 심리적 건강의 맥을 잡아보고 또 그들의 긍지를 높이기 위한 여러 가지 토의를 한다.
캠프에 모인 입양아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다. 자기가 사는 곳이나 학교에서 자기는 유일한 한인, 동양인이라는 것이다. 잘하면 다른 한두 가정이 있을까 말까 이다. 그렇기 때문에 캠프에 와서 다른 한인 입양아 친구를 만나고, 또 언니, 오빠벌이 되는 카운슬러와 한인 교사들을 만나 역할 모델로 삼을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단다.
참가 학생들은 한국음식을 직접 해보고 먹어보면서, 한국어를 배우면서, 미술을 통해 한국의 얼을 습득하면서, 북을 둥둥 치면서 겉모습만이 아닌, 속까지 알찬 한인으로서의 긍지를 키워간다. 그 과정에서 이제까지 부정적으로 느껴지던 것들이 자랑스럽고 특별하게 느껴지는 변화를 겪는다. 앞에 예를 든 헨리도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겉과 속이 맞아 들어가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자란다면 누가 ‘차이니스’라고 놀려도 마음이 덜 상할지 모르겠다.
올해 캠프 세종의 주제는 고구려였다.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어 캠프 마지막날 부모들을 위한 학예회에 내놓았다. 그것을 보면서 내 눈시울이 촉촉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한인으로서 나의 긍지도 더 높아 가는 것은 생각지 못했던 선물이었다.

www.afterthemorningcalm.com
박혜숙
임상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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