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피부로 느껴지는 한류열풍

2006-08-2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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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우리 집에도 한류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딸 제시카의 방에 처음으로 한국 가수 ‘동방신기’의 사진이 걸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껏 서툰 한국말 쓰기를 꺼려하더니 이제는 열심히 한국어로 대화하려 하고 어릴 적 몇 번 다녀온 한국여행에 별 관심을 갖지 않았던 아이가 올 겨울 방학에는 사촌언니, 중국계 친구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하겠다고 야단 이다.
사실 대학입학 후 사귀게 된 중국계 친구들이 딸아이의 한류열풍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요인이었다. 딸이 USC 신입생 때 만난 룸메이트가 인도네시아에서 온 중국계 학생이었던 덕에 딸아이는 자연스레 많은 중국계 친구들을 갖게 되었다.
중국계 친구들도 매우 다양해서 인도네시아, 홍콩, 대만에서 자란 친구들, 베트남, 대만에서 미국으로 이민온 차이니즈 아메리칸 친구들 등이 바로 그들이다. 흥미롭게도 그 친구들의 공통점은 제시카보다 훨씬 더 높은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과 지식 수준이었다.
작년 추수감사절 기숙사에 남아있던 딸아이의 친구 둘이 터키보다는 한국 음식을 먹어보고 싶다고 하여 그들과 함께 한국 음식점에 갔었다. 그런데 주 메뉴인 갈비가 나오기도 전에 김치를 비롯한 다양한 밑반찬들을 깨끗이 비우는 모습이나 제시카는 별 관심을 갖지 않았던 한국 드라마 ‘대장금’까지 다 보았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대중문화와 음식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지식수준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중 홍콩에서 온 친구는 ‘대장금’의 마지막 회를 어머니와 함께 홍콩 한 호텔의 대형 스크린을 통해 시청했으며 그 친구의 어머니는 ‘대장금 테마관광’차 한국 여행까지 다녀왔다는 것이었다. 드라마 ‘대장금’의 마지막회 시청률이 홍콩 방송사상 최고기록인 47%, 즉 홍콩 사람의 절반이 시청했다고 하니 그들의 한류 열풍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 었다.
얼마전 뉴욕에서 열렸던 코리안 소사이티 주최 토론회의 보고에 의하면 아직 미국에서는 한류열풍이 시작되었다고 보기 힘들며 그 이유는 미국에 공존하는 다양한 문화적 기반들이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문화환경과는 다르기 때문이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한류열풍은 적어도 이곳 중국계 미국인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 같았다.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대만에서 이민온 직원은 LA차이니스 신문에 한국 드라마의 배우 사진들이 대문짝 같이 소개된다며 자기 식구들 중 이민1세의 어머니와 이모들이 ‘겨울연가’, ‘대장금’ 팬이라는 이야기도 해주며 한국 여배우들이 다른 아시아 여인들보다 뛰어난 미인이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제시카의 친구 중 한국문화에 흠뻑 빠져있는 베트남계 중국인 친구는 아예 자신이 ‘왕의 남자’와 같은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들고 집으로 찾아올 때가 많다. 그들의 관심사는 이제 영화나 드라마를 넘어 ‘X맨’과 같은 게임쇼나 라디오프로, 동방신기가 나오는 가요프로, 코미디 프로까지 아주 다양했다.
약 38억달러의 경제적 효과를 가져온다는 한류열풍이 한국에 대한 이미지 향상, 한국제품 선호 등 다양한 부분에서 효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신문기사들이 실증되는 현상을 볼 수 있었다.
중국계 친구들 덕분에 시작된 딸아이의 한류열풍이 딸아이로 하여금 한국말을 열심히 배우게 하고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 확립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한류열풍은 나에게도 무척 반가운 일임에 분명하다.
이처럼 다양한 대중문화를 통해서 이곳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한류열풍이 계속되어 한국인들의 이미지가 향상되고 한국 제품에 대한 선호도도 높아져 미국에서 살아가는 우리 코리안 아메리칸에게 힘을 실어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
몇달 전 LA 타임스에서 ‘겨울연가’의 주연배우 배용준의 인기를 아시아의 비틀즈 신드롬으로 소개한 글은 미국의 한류열풍의 시작일 수 있다고 본다.

케이 송
USC 부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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