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카뮈의 ‘최초의 인간’

2006-08-1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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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1월4일 월요일 오후 1시55분 상스에서 파리로 가는 국도 7번. 파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빌블르뱅 마을 어귀.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이 양편에 늘어서 궁륭을 이루고 있는 국도 상에서 돌연 알 수 없는 ‘끔찍한 소리’가 쾅하고 들렸다. 자동차 한대가 육중한 가로수를 들이받고 섰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미셸 갈리마르는 물론 그 옆자리에 앉아 있던 작가 알베르 카뮈도 현장에서 사망, 마흔 일곱살, 노벨상을 수상한지 3년 뒤였다… 자동차가 가로수와 충돌하여 멎는 순간 이제 막 깊게 갈아엎은 길 옆의 밭고랑으로 퉁겨나간 것들 중에는 검은 색의 작은 가방이 하나 있었다. 그 가방 속에는 카뮈가 살고 있던 루르마랭을 떠나기까지 열중하여 집필하고 있었던 육필 원고가 담겨 있었고 그 ‘작품’이 ‘최초의 인간 Le Premier Homme’이다.”
마치 영화의 충격적인 첫 장면 같은 카뮈의 죽음의 상황 34년 후 출판된 카뮈의 소설을 읽은 것은 작년쯤인데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면서 마치 자신의 삶에의 의지와 열망, 그 의미를 밝혀 보여주는 것 같았던 기억이 있다.
미완성인 이 소설에서 특히 내가 좋아하는 대목은 2부 아들 혹은 최초의 인간 중 2장으로 ‘자신이 생각해도 알 수 없는’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아! 그렇다. 그러하였다. 그 아이의 삶은 그러하였다. 헐벗은 필요만이 이어주는 그 동네의 가난한 섬 속에서, 불구인 데다가 무식하기만 한 가족들 속에서, 으르렁대는 젊은 피, 삶에 대한 탐욕스런 갈망, 사납고 굶주린 지성을 가슴에 품고, 광란하던 즐거움은 낯선 세상이 그에게 가하는 돌연한 펀치에 번번이 끊어져 당황스럽기 그지없지만 곧 바로 정신 가다듬고 알 수 없는 세상 이해하고 알고 동화하려 애쓰며, 슬그머니 빠져나가려 애쓰는 법 없이, 결국은 언제나 태연한 확신을 버리지 않고, 자신 만만.
그렇지, 자신만 가지면 원하는 건 무엇이나 다 이룰 수 있으니까, 이 세상 것이라면 이 세상만의 것이라면 어느 것 하나 불가능할 건 없으니까, 선의를 가지고, 치사하지 않게, 세상에 다가가므로 과연 그 세상을 동화시켜 가며, 그 어떤 자리도 욕심 내지 않고 오직 기쁨과 자유로운 인간들과 힘과 삶이 지닌 좋은 것, 신비스러운 것, 결코 돈으로 살 수 없고 사지 않을 모든 것만을 원하기에 도처에서 제 자리에 있으려고 준비를 하는 그의 삶은 그러하였다.
…중략…
아직도 그의 내면에서는 매일매일 마치 그의 사막 같은 고뇌, 가장 비옥한 향수, 헐벗음과 소박함에 대한 돌연한 욕구, 무로 돌아가고 싶은 열망처럼 가장 격렬하고 가장 무시무시한 그의 욕망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었다.”
마치 연주회에서 장엄한 첼로의 선율이 숨돌릴 시간도 없이 강렬하게 시작되듯이 이 문장은 그렇게 시작하는데 7페이지 정도의 이 글은 정말 너무 멋지다.
지난 7월 나는 서점에 들러 ‘최초의 인간’을 다시 샀다. 내가 지난 10년 동안 살았던 선랜드의 집에 불이 나서 모든 것이 다 타버린 잿더미를 바라보는 아침, 인생의 커다란 전환의 시대에 서서 누군가 위대한 영혼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모든 역사로부터 해방되고 과거의 상처로부터 해방되어 금방 태어난 아이처럼, 아침이슬처럼 맑고 신성하게 하루하루를 사는 법을 깨쳐야 했다. 잿더미 위에 내리는 무심한 햇살의 아름다움조차 느끼며 가벼워지고 비워진 알 수 없는 삶의 충동과 의지가 솟구치는 가운데 인간에 대한 카뮈의 자비와 예지를 다시 떠올리는 것이었다.
그렇다. 우리 모두 최초의 인간들이다.

박혜숙
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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