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상에 꼭 필요한 한 가지

2006-08-1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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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엔 없는 것이 없다. 그러나 꼭 필요한 것 하나가 없다. 분(憤)을 일으키는 기(氣), 화(火)를 끓어오르게 하는 기(氣), 화(禍)를 불러오는 기(氣), 이 모두를 채울 용기(容器), 즉 진정한 용기(勇氣)가 꼭 필요한 세상이다.
분(憤)은 가슴속에 우글거리는 원통한 감정이다. 화(火)는 그 분통함이 밖으로 방출되는 기운이다. 화(禍)는 끓어오르는 화(火)가 변하여 야기된 피해다. 분이 넘치면 화(火)가 나고 결국에는 ‘너 죽고 나죽자’식의 모든 것이 끝장나는 화(禍)를 불러온다.
분이 화로 치밀어 화를 끼칠 때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타겟, 타이밍, 그리고 수단이다. 우선 대상이 자취를 감추면 화를 풀 수가 없고, 상대가 도망치기 전에, 상대방이 허점을 보일 때, 울분이 식기 전 등 타이밍을 잘 포착해야 한다. 아울러 화를 과시할 무기가 없으면 헛일이다. 유사이래 무기로 쓰이던 것이 언어다. 독설은 원시적이긴 하지만 타겟과 타이밍을 정확히 맞추면 사람의 꼭지를 돌게 하고 치명적으로 더 큰 피해를 야기한다.
지난달 12일부터 이스라엘 군과 정치 무장조직 헤즈볼라의 마찰이 재발했다. 한 달 이상 계속된 이 격전은 10년 전과는 달리 그 미치는 화(禍)가 엄청나다. 첨단화된 무기과학의 혜택으로 고성능 미사일들이 타겟을 명확하게 그리고 시간적으로 신속하게 맞출 수 있어 결정적인 화(禍)를 가져오는 것이다.
서로에게 맺힌 원한과 울분을 억제할 수 없는 양쪽 사정에 동정이 간다. 그러나 정말 근절해야하는 전쟁 수뇌들과 미사일 기지 대신 엉뚱한 타겟만 요절나고 있다. 헤즈볼라는 죄 없는 노인들 부녀자들 어린아이들을 방패로 내놓고 이스라엘 군은 그 사실을 버젓이 알고도 민간인 살생과 환경파괴를 주저하지 않는다. 전에 없던 힘 과시로 애매한 인명과 환경에 치명적인 화(禍)를 불러오니 도저히 정당한 행위로 간주될 수 없다.
요즘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터뜨리는 경우가 너무 흔하다. 민족 간 뿐만 아니라 한 직장에서도, 한 지붕 밑에서도 흔히 벌어진다. 터져 나오는 울분을 독설이나 거친 말로, 주먹과 발놀림으로 혹은 손에 잡히는 무엇이나 휘둘러 그 미치는 화가 끔찍하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이를 자긍심의 결핍으로 본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부정적 생각이 극으로 치우쳐 극단적인 행동을 취하고 만다. 상대방은 물론 그 주위 사람의 가치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생태환경 학자들은 사람의 심성에 터져 나오는 화를 누를 만한 능력의 상실을 지적한다. 세상이 온갖 최신 테크놀러지로 너무 편하다보니 조금만 불편해도 화가 나고 약간의 마찰에도 참지 못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화 풀이 가능한 도구를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혼자 살 수 없기에 사람 사이에 마찰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서로 알게 모르게 상처를 준다. 사람이면 누구나 받은 피해로 분이 끓어오름은 당연하다. 돌아가는 사태를 지켜보면 설사 마찰의 당사자가 아닌 제 삼자임에도 불구하고 화가 난다. 참지 못하는 화(火)로 치명적인 화(禍)를 입힐 때 인간관계는 깨지고 만다.
화(禍)를 당하면서도 화(火)를 누르는 그 힘은 과연 무엇일까?
요즘 세상 살아가는데 부족한 것이 없다. 그러나 각자의 삶에 하나가 꼭 필요하다. 분(憤)을 일으키는 기(氣), 화(火)를 끓어오르게 하는 기(氣), 화(禍)를 불러오는 기(氣), 이 모두를 채울 큰 용기(容氣)다.
기독교인으로서 볼 때는 예수님이야말로 그 모두를 채우는 용기(容器), 즉 진정한 용기(勇氣)를 발휘한 분인 듯하다. 자신이 죽음으로 이르는 지경에도 결코 어느 누구에게도 화를 주지 않고 오히려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는 진정한 용기를 지니셨다.
진정한 용기야말로 화(禍)를 저지르는 대신, 옳고 그름이 판가름 날 하나님 때를 믿고 참는 힘이며 사랑과 용서로 화합을 창조하는 힘이다.

손 성
목사·사우스패사디나
태평양 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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