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프리카의 뱀

2006-08-0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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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돌아와서 한인 부부와 식사할 기회가 있었다. 이 부부는 중국 연변으로 선교 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들은 아프리카에서 선교하는 우리더러 용감하다면서 아프리카의 열대지방 풍토병도 무섭지만 더 무서운 것은 뱀이 많기 때문이라며 그곳으로 가지 않아 다행이라 했다. 그의 남편 입에서 ‘뱀’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그의 아내는 손을 내저으면서 소름 끼쳐 했다.
이와 같은 극심한 뱀 공포증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뱀도 개나 새와 같이 하나님이 창조한 동물이 아닌가.
뱀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고백하건대, 이번 여름선교 중 나는 나보다 더 키가 큰 뱀을 집어들었다(뱀을 무서워하는 한인 독자들에게 미리 경고함: 뱀이라는 말만 들어도 기절하는 사람은 이 글을 읽지 말고 스포츠 면이나 패션 면을 읽기 바람).
부룬디에서 선교를 마친 우리 일행은 탕가니카 호수에 많이 있다는 하마와 악어를 구경하러 갔다가 허탕을 쳤다. 누군가가 근처에 있는 동물원에 가면 악어를 볼 수 있다고 하였다. 동물원에 들어간 후에야 알게 되었는데, 이 동물원은 아프리카에서 사는 여러 종류의 파충류들을 보유하는 곳이었다.
아프리카 동물원 직원은 미국 동물원 직원과 달랐다. 미국에는 “유리관을 두드리지 마세요. 동물에 방해가 됩니다”라는 메시지가 붙어 있다. 우리를 안내하였던 관리인은 코브라가 있는 유리관을 막대기로 꽝꽝 두드렸다. 바위속에 숨어 있던 뱀이 빠른 속도로 유리창 쪽으로 달려왔다. 그는 두세 번을 더 유리창을 두드렸다. 그리고 긴 막대기를 유리관으로 밀어 넣어 코브라를 꺼내 시멘트 바닥에 놓고 우리에게 구경시킨 후에 다시 집어넣었다.
그 다음에는 2미터 정도 되는 비단뱀을 유리관에서 꺼냈다. 그는 뱀을 손으로 잡아 어깨에 걸치더니, 우리 일행 중 이 뱀을 들어볼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내 앞에 서 있던 네 명 모두 동시에 뒷걸음을 쳤다. 그 남자는 나에게 뱀을 건네어주었고 어떨 결에 나는 그것을 받았다.
나는 큰 뱀에 대한 몇 가지를 새로운 점을 발견하였다. 첫째, 그것은 아주 딱딱하고 까칠한 마른나무를 만지는 느낌이었다. 다음은 뱀의 맥박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것은 마치 사람 가슴의 고동치는 맥박 같았는데, 맥박이 뛰는 방향이 달랐다. 그 느낌은 내 평생에 손으로 잡아본 어떤 것의 느낌과 달랐다. 아내가 용감한 나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은 다음 나는 그것을 다른 용감한 사람에게 넘겨주었다. 아내는 빨리 손을 씻으라고 구박을 했다.
미국에 온 후 나는 그곳에서 찍은 사진을 선교 웹페이지에 올렸다 (http:// comeandseeafrica.org/). 우리와 함께 아들을 선교 보낸 한인친구가 선교활동이 담긴 수백개의 사진을 한 장면 한 장면 보면서 은혜를 받았다 한다.
그런데 갑자기 뱀 사진이 컴퓨터 스크린에 나타나는 바람에 쇼크를 받아 병원에 갈 지경이었다 한다. 왜 어떤 사람들은 뱀에 대하여 그처럼 강한 반응을 일으키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지만, 병원에 갈 정도로 충격을 준 그 사진들을 얼른 삭제시켜 버렸다.
왜 사람들, 특히 여자들이 뱀을 무서워하는가는 성경 속에 그려져 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창세기 3:15) 여자들이 왜 뱀을 무서워하는가에 대한 설명은 되지만 나의 한인 남자친구들이 뱀을 무서워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까? 아마 그들은 나보다 아담과 이브와 촌수가 더 가까운 아들들이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또 다른 성경구절을 기억한다. “그들은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마가 16:18).
성경을 연구하는 묘미는 구절을 찾아 두 가지의 이슈를 논쟁하는 데 있다. 한국 사람들은 창세기로부터 왔고, 미국 사람들은 마가복음에서 왔다고 할까.

교육학 박사·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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