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에라 클럽

2006-07-2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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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독립기념일 연휴에는 맘모스 레이크로 하이킹을 갔다. 치과에서 수술을 받은 직후라 음식도 제대로 씹지 못하고 아주 지쳐 있는 상황이었으나 남편이 6개월 전에 이미 예약을 하고 경비를 지불한데다 모처럼의 하이킹 위주 여행을 그가 은근히 기다려온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터라 여행을 취소하자는 말을 못하고 겨우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때 까지도 맘모스 레이크 주변 산에는 눈이 남아 있었고 스키장도 열려 있었다. 각색의 야생화가 만발한 들판 사이로 눈 덮인 산에서 내려온 얼음 같이 차고 맑은 물이 찰찰 넘치는 계곡과 호수가 보이는 경치를 접하는 순간, 어차피 낑낑 거릴 바에는 기왕이면 이런 곳에 누워 있는 것이 잘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친구 하워드는 보험회사 사장을 지내다 은퇴한 이후 미국의 대표적 자연 보호 단체인 시에라 클럽의 하이킹 리더로 봉사하면서 적어도 주 2회 산타모니카 마운틴으로 하이킹을 가고, 주 1회는 부인과 산타모니카에서 해안을 따라 팔로스 버데스 까지 자전거로 왕복하면서 아주 활동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가 가끔씩 자신이 리드하는 하이킹 관련 이메일을 보내면 우리도 쫓아가곤 했는데, 이번 하이킹도 그가 주도하는 것이었다.
40인승 버스를 대절해 두 팀이 함께 길을 떠났는데 우리 팀 24명은 맘모스 레이크의 콘도에서 머물면서 하이킹을 했고 또 한 팀 16명은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야영을 했다. 40명 중에는 너덜너덜한 청바지 차림의 20대 청년들부터 은퇴한 노인들 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야영 팀에도 70대의 노인 몇 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맘모스 스키장 리프트를 80세 이상인 사람들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말을 듣자 우리 팀의 마가렛은, “에이, 한 달만 먼저 났다면 이번에 무료로 탈수 있었을 텐데…” 하고 아쉬워했다. 그녀는 아침이면 누구 보다 먼저 일어나 혼자서 일찌감치 한 바퀴 등산을 하고 왔다.
재미있는 것은 전체 40명 중 절반 이상이 독일, 스웨덴, 스위스, 유고슬라비아, 코스타 리카, 일본, 한국 등등 해외 출생자들 이란 사실이었다. 독립기념일 날 콘도에서 바비큐를 하며 독일 출신 루카가, “자, 이래서 미국은 위대한 나라가 아니겠는가? 건배합시다!” 고 외치자 모두들 좋다고 와인 잔을 찰칵 부딪쳤는데 미국 출생자들 사이에서는 이 자리에 부시 대통령이 와서 좀 봐야 한다며 그의 이민정책을 꼬집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 순간 나는 강한 힌트를 받았다. 수 십 년을 미국에 살아도 주류 사회에 별로 끼어들 기회가 없는 다수의 우리 한인 1세들이 아주 당당히 참여할 수 있는 단체가 바로 시에라 클럽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자연을 사랑하고 보호하자는 취지를 가지고 출발한 이 클럽은 현재 75만 명의 회원을 가지고 있는데 각 지역별로 주중과 주말에 쉬운 코스부터 어려운 코스 까지 다양한 하이킹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때로는 저렴한 값에 장기 여행을 제공하기도 한다. 회원이 아니라도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지만 연회비도 50달러 정도로 저렴하니 회원 가입에 큰 부담은 없다. (시에라 클럽 웹사이트: www.sierraclub.org)
친절한 태도와 열린 자세를 가지고 있는 다양한 미국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산을 오르면서, 영어가 서툴다고 주눅들 필요 없이 미소와 간단한 대화를 주고받으면 육체적 건강은 물론, 정신적 건강에도 아주 좋을 것 같다.

김유경
campwww.com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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