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 덩이 숯으로 타버린 노인들

2006-07-2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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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디트로이트에 사는 한 꼬마 동포의 꿈을 소개한다.
“7년간 꽃밭을 일구다 지난여름 호박꽃의 수술을 따 수박 꽃의 암술에 발랐더니 가을에 호박도 아니고 수박도 아닌, 진한 쑥색의 이상한 과일이 생겨났어요. 여러분, 신기하죠?”
매주 토요일마다 문을 여는 현지 세종 한글학교 7년에 재학 중인 조윤경 양의 꿈으로, 지난 주 콜로라도 주 덴버에서 재미한글학교 협의회(NAKS)가 주최한 `나의 꿈 말하기 대회`에 출전한 조 양의 체험기다.
그 과일을 잘라먹어 본 즉 호박과 수박의 중간 맛이었고, 씹어봤더니 뭉클 뭉클 하면서도 아삭거렸다. 해서, 소녀는 이 이상한 과일에 ‘호박멜론’이란 이름을 달아 준다. 20년 후 세계 최고의 유기농 농부가 되는 게 꿈이다.
이 대회에는 멀리 바다건너 뉴질랜드에 사는 꼬마동포 여지연 양(와이카토 한글학교 6년)도 찬조 출전했다. 여객기로 만 41시간을 달려 온 이 꼬마 동포 2세는 아예 나이까지 박아 구체적인 청사진을 펼치고 있다.
“시계 바늘을 2015년, 제가 스물 한 살이 되는 해로 빠르게 돌려놓겠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대학) 졸업 작품전을 갖고, 거기서 1등을 한 후 파리로 가서,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할리우드 스타들에게 한국 사람인 제가 만든 옷을 입히는 거예요. 자신 있느냐 구요? 걱정 마세요. 자랑스러운 한국의 딸이니까요. 모든 친구들, 아자, 아자, 화이팅!”
꼬마 동포들의 꿈을 하나하나 현장에서 해몽(?)하다보니 왈칵 눈물이 솟는다. 시계 바늘을 이번엔 내가 돌려본다. 만 70년 전 구 소련 땅 연해주 우스리스크로 되돌려 본다.
“제 나이 여섯 살 때였어요. 가족들과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옮겨지고 있었는데, 기차 안은 화장실도 없었어요. 그렇게 몇날 밤을 달려가다 우리 가족은 갈대가 많고 사람이 없는 곳에 강제로 내려져, 그 곳에서 갈대로 집을 만들어 살았어요. 밤마다 늑대 우는소리에 무서워 잠을 못 잤고...”
1937년 스탈린의 강제 이주명령으로 고향인 연해주를 떠나 우즈베키스탄으로 끌려갔던 김 나제스타(75세) 할머니의 뼈저린 기억이다. 이 달 초 재외동포재단 초청으로 서울에 온 해외 유공동포 26명이 털어놓은 회고록 녹취 내용 가운데 일부다.
통계에 따르면 당시 20만 강제 이주교민 가운데 8만 명이 기아와 전염병, 현지 중앙아시아 사막의 추위로 죽는다. 이번 덴버의 꿈 잔치 소식을 들었던들 “꿈 좋아하네!” 소리를 내질렀을 법한, 우리 한민족 수난사의 앙칼진 명암이다.
허나 녹취를 계속하다보면 뭔가 이상한 게 잡힌다. 역시 강제 이주당한 박 드미트리(70) 할아버지의 구술부분.
“강제 이주 당해 살림은 어려웠지만 9남매 중 4명이 고등교육을 받았다. 나는 사마르칸트 대학에 입학해 양목(養牧)을 전공, 우즈베키스탄 농업성 과장과 집단회의 농업부장을 거쳐 그 나라 정부가 주는 축산학 유공자 상을 받았다. 그 후 국회의원도 됐고, 우수노동자 메달도 받았다”
김 그리고리(79)할아버지의 구술을 듣다보면 신명까지 난다.
“(강제이주 후)열심히 공부해 타쉬켄트 운전학교 교장, 당위원회 재정경제부장이 됐고 소련 최고회의 간부회의가 주는 공로장도 받았다. 세 아들 모두 의과대학을 나와 첫째는 타쉬켄트시 외과병원 원장이고 둘째는 부원장, 셋째는 피부과병원 원장이다”
비록 70년이라는 강물은 흘렀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결코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꿈을 미리 말하지 않았을 뿐, 중앙아시아 그 황량한 사막에서도 보라는 듯이 꿈을 펼친 것이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그 곳 어디엔가 샘이 숨어있기 때문이라던 작가 생텍쥐베리의 말이 정말 맞다.
귀국하는 기내에서 줄곧 여과(濾過)라는 단어만을 떠올렸다. 초등학교 자연시간에 배운, ‘자갈-모래-숯-모래-자갈’이라는 식수마련 과정 말이다. 재미꼬마 동포들이 저리 재잘대며 펼쳐 보인 꿈은 일테면 말갛게 걸러진 식수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수난은 민족사 측면에서 보면 자갈, 모래, 숯…가운데 핵심적인 숯에 해당된다. 70년 후 손자 손녀들의 꿈을 티없이 걸러내기 위해 노인들은 저토록 까맣게 타들어 한 덩이 숯이 된 것이다.
<덴버-서울 기상에서>

김승웅
한국 재외동포재단
사업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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