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몰락이후의 삶
조정래 지음
장장 20년의 세월을 바쳐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와 씨름하면서 일궈낸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의 작가 조정래가 4년만에 쓴 신작 장편소설이다.
앞선 대하소설들이 민족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재현하는데 초첨을 맞추었다면, 이소설은 분단시대의 고통을 온몸으로 감당해온 한 개인의 시각을 통해 사회주의 몰락 이후의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대하소설 ‘태백산맥’을 발표한 뒤 한때 좌익을 옹호한 작가라는 비판을 받으며 이념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던 작가는 이 소설에서 냉철한 시각으로 사회주의의 이상이 변질되면서 몰락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하려고 만든 이데올로기를 인간의 본성인 이기심을 극복하지 못하고 비인간적으로 운용해왔으므로 사회주의체제가 망한 것을 당연한 일이라고 작가는 등장인물의 입을 통하여 견해를 밝힌다.
남파 간첩으로 내려왔다가 체포되어 30년간의 감옥살이 끝에 강제 전향을 당하고 출소한 장기수 출신의 노인인 주인공 ‘윤혁’이 역시 강제 전향을 당한 장기수 박동건의 죽음을 맞게 된다. 박동건은 ‘사상의 조국’ 소련이 “미국과 전쟁을 한 것도 아니고, 저절로 폭삭 주저 앉아버리고”, “태산같이 믿었던 주체조국 북한마저 인민을 굶주리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을 알고 ‘헛살았다’는 자괴감에 빠지다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만다.
윤혁 역시 사상적 동지의 죽음으로 인한 회한과 과거의 악몽에 시달리면서 “평생을 바쳐온 이상이 자취 없이 사라져버린 상황 속에서 참담한 패배와 비참한 일생의 허무를 느끼며” 자신의 삶이 허망하다는 회오에 사로잡힌다.
우리 민족의 통일은 분단으로 왜곡된 제도와 이념과 의식을 반성하고 새로운 인간적 심성의 토대 위에서 ‘연습’을 하듯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과정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저자는 이 소설의 주인공을 통하여 그 방향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