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름다운 유산

2006-07-1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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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너무 힘들거나 시들하다가도, 계속되는 사회의 부조리에 분노하고 절망하다가도, 한줄기 시원한 바람을 맞은 듯 일순간에 절망, 분노, 고통이 가라앉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아직 우리 주변 곳곳에 살아있는 따뜻한 선의를 느낄 때다. 그러므로 따뜻한 마음이 주는 도움은 그것을 직접 받는 사람 뿐 아니라 그것을 전해 듣는 많은 사람에게도 함께 주어지는 셈이다. 폐암으로 숨진 박정자씨가 기부한 15만 달러(본보13일자 보도) 역시 직접 돈을 받은 장학생이나 장애인단체 만이 아니라 한인사회 우리 모두에게 남겨준 ‘아름다운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12일 유족들이 밝힌 바에 의하면 지난 연말 78세로 타계한 박정자씨의 유산은 고인의 뜻에 따라 일부는 장애인 단체로 보내지고 나머지는 교회를 통해 형편이 어려운 대학생들의 장학금으로 지급하게 된다.
지난달엔 세계2위의 부자 워런 버핏의 대규모 기부가 전 세계인에게 감동을 주었지만 큰 부자라야만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남을 도움으로 해서 진정한 부자가 될 수 있다. 박정자씨는 큰 부자도, 특별히 다복했던 사람도 아니었던 듯하다. 꾸준히, 성실하게, 아끼며 살았던 보통사람으로 보인다. 남편이나 자녀 없는 혼자 살림으로 풍족하게 살 수 있었지만 낭비하지 않았다. 평소 주위에서 구두쇠로 불리 울 만큼 검소했다. 오래된 소형차를 타고 외식도 삼간 채 절약하며 소박하게 생활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모은 돈을 어려운 남을 돕는데 써달라고 남긴 것이다.
15만 달러가 큰돈은 아닐 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규모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어둠 속에서 켜는 하나의 촛불과도 같다. 고인의 유산관리를 담당한 조카는 고모의 유언은 자신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주는 큰 감동이었다”고 말한다. 불신이 가득 찬 어두운 사회에서 하나의 촛불은 너무 희미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름다운 유언에는 ‘감동’의 큰 물결을 일게 하는 힘이 들어 있다. 감동의 물결이 퍼져가며 하나의 촛불은 둘이 되고 둘은 넷이 되고, 넷은 다시 여덟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촛불이 늘어갈수록 우리 커뮤니티도 점점 환하게 밝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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