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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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발의 이방인 며느리

2006-07-1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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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하와이 여행에서 돌아온 날밤 가을의 풀벌레 소리와 함께 깊이 잠들었다. 두꺼운 어둠을 깨뜨리는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어머니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갔다는 소식이었다. 마지막 통화를 어머니와 나눈 시간은 24시간도 되지 않았다. 전화기에서는 아직도 어머니의 숨결이 남아 있었다.
나는 올케인 제인과 함께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으로 급히 달려갔다. 어머니 막내 며느리인 제인은 아이리시 계통의 금발의 미국인이다. 어머니와 제인은 서로 말이 통하지 않으니 가까이 다가가기에는 너무나 먼 사이였다.
우리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맨 먼저 어머니가 모든 시간과 열정을 쏟았던 서재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는 붓글씨를 쓰시다가 멈춘 종이와 붓에 아직도 먹물이 마르지 않은 것 같았다.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죽음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한 사람의 길고도 긴 생애와 동작이 어느 한 순간에 멈춘다. 방에는 풀 냄새가 나는 한지와 먹, 그리고 수십 개의 붓이 꽂혀 있는 하얀 도자기 병이 놓여 있을 뿐, 아무 치장도 꾸밈도 없다.
삼일장의 장례를 치르고 마지막에 묘지에 도착하여 하관식이 진행되었다. 묘지에 모인 친척 여인들이 땅을 치며 통곡을 하 였다.
“아이구 이렇게 허무하게 갑자기 가시면 어떡합니까?”
그들은 찢어지는 듯한 울음소리로 울부짖으며 몸에 담긴 슬픔을 모두 쏟아버리고 있었다. 펑펑 눈물을 쏟아내는 한국 여인들을 보면서 내 가슴이 확 뚫리는 것 같았다. 어머니 산소에 모인 사람들은 통곡을 하면서 딱딱하게 응고되었던 슬픔의 덩어리를 녹인다. 눈물이라는 액체는 슬픔을 씻어내는 카타르시스 작용을 하지 않는가.
제인이 말했다.
“한국 여인들은 심장이 찢어지는 듯 슬프게 우는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의 장례식은 어떤가. 진공청소기로 사람들의 체취와 땀 냄새를 말끔히 빨아낸 듯한 냉기가 도는 경직된 분위기이다. 남자는 정장을 하고 여자는 검은 드레스를 단정하게 차려 입고 조용하고 정돈된 표정들이다. 가벼운 화장에 우아한 옷차림을 한 우수에 찬 여자들의 모습은 아름답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들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주고받고 자제력을 잃고 소리내어 울지 않는다.
하관식이 끝난 후 산소 앞에 돗자리를 펴고 빈대떡, 돼지삼겹살, 갈비, 북어무침, 나물 등 음식이 차려졌다. 그들은 울음을 그치고 소주와 안주를 먹었다. 그들은 먹고 마시고 큰 소리로 떠들었다. 죽은 자와 살아있는 자의 선이 냉혹하게 그어지는 순간이었다. 제인은 남편의 모국인 낯선 땅에서 벌어지는 원색적인 풍경에 놀라고 있었다.
하얀 상복에다 버선에 고무신을 신은 푸른 눈의 이방인인 제인은 땅에까지 끌리는 상복치마를 감당 못해 쩔쩔 매고 있었다. 한국 사람들은 국제화 시대의 시민의식으로 지나치리 만큼 그녀에게 친절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기름종이에 물이 스며들지 않는 것처럼 겉돌았다.
금발의 며느리 제인은 시어머니의 장례식을 끝내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질문화에서 받은 급성 문화충격이라는 열병을 앓았다. 아마도 지금도 후유증을 앓고 있지 않을까.

박민자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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