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1천여 학부모를 만난 후

2006-07-1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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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에게 첫번째라는 단어는 보다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첫 사랑, 첫 인상, 첫 만남 등 첫번째의 의미는 시간이 흘러도 두고두고 추억으로 남게 된다고 본다. 학업을 마친 후 처음 풀타임으로 일한 KYCC 한인타운 청소년 회관은 나에게 잊지 못할 첫 직장이었다. 어리버리한 신참의 모습에서 시작하여 지난 8년간 KYCC 상담부에서 근무하던 일을 마무리하는 6월의 마지막 주까지 많은 보람과 자부심을 준 직장이기 때문이다.
처음 근무를 시작했던 날의 기억에서부터 그간 진행했던 수많은 학부모 세미나, 부모님들의 바쁜 스케줄을 맞추기 위해 어둑어둑해지면 끝났던 하루 일과, 워크샵을 마치고 밤에 운전하고 집에 돌아오면서 밝게 떠있는 달을 쳐다보며 괜히 혼자 뿌듯했던 “내 일에 대한 자긍심” 등 지나간 8년간은 개인적으로 그리고 전문인적으로 많은 배움과 성장을 이룬 보람찬 기간이었다. 그간 내게 담당된 학부모는 숫자상으로 1천명이 넘었다. 이분들께 내가 얻운 소중한 교훈들은 부모-자녀 관계만이 아닌 대인 관계 전반에 걸친 인생 기술이었다.
그중 한 가지 ? 그 어떠한 체벌 방식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가진 것은 부모님의 격려와 인정이라는 것을 배웠다.
부모가 화를 내고 잔소리 하는 것은 자녀의 행동을 효율적으로 훈육하는 방법이 결코 되지 않는다. 부모는 “이렇게 화를 내고 혼쭐을 내놓았으니 정신 좀 차렸겠지”라고 생각하겠지만 대부분의 자녀는 “괜히 나만 가지고 그래” 혹은 “원래 우리 엄마는 화만 내. 그런데 오래 안가”의 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자녀의 특정 행동이 못마땅할 때 부모의 잔소리나 푸념과 함께 이어지는 체벌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상황에서 자녀가 노력했던 점, 상황이 더 악화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지 않은 점, 그리고 자녀의 발달 단계등을 고려하여 자녀의 감정을 받아주고 이전보다 좋은 방향으로 행동한 점이라던가 노력했던 것을 인정하고 지적해주는 부모의 격려가 부모와 자녀 관계를 보다 굳건히 해줄 뿐만 아니라 자녀의 자긍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또 한가지 - 자녀 양육에서 부모의 긍정적인 인생의 롤 모델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배웠다.
학부모 상담 시간에 항상 부모와 함께 자녀 양육의 단기적 목적과 장기적 목적을 세웠는데, 10년 후 자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부모의 장기적 목적이 무엇인가를 질문하면 대부분 부모들은 “글쎄요…학교 다 마치고 자기 일 알아서 하는 것 정도?”라고 말했다. 평범한 것 같지만 실행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장기적 목적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녀가 스스로 컨트롤하는 능력(sense of self-control)을 갖추어야 하고 또한 자긍심(self- esteem) 역시 뒷받침되어야 하며 대인관계 기술 및 life skills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바쁜 부모의 일상에서 자녀들이 “알아서 제 할일을 미리미리 해준다면” 너무도 좋겠으나 부모가 바쁘고 힘들 때만 골라서 속을 썩인다는 한 아버지의 말처럼 자녀 양육은 정답도 없고 자녀가 언제 철이 들지 정해놓은 시간표도 없다. 자녀의 행동을 부모의 감정 및 개인 문제와 함께 뒤섞지 않는 부모의 긍정적 가치관은 자녀가 인생을 살면서 용기와 힘을 주는 롤 모델 역할을 할 것이라 믿는다.
그동안 상담원으로 일하면서 이같은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행운이었다. 또한 커뮤니티를 위해 일하는 한인청소년회관(KYCC)의 일원이었다는 것도 보람찬 경험이었다. KYCC 상담부는 한 시간 간격으로 진행되는 상담 스케줄뿐만 아니라 가정방문 상담과 학교에 상담원이 파견되어 진행되는 학교상담 및 보호감찰국, 학교 회의, 아동 보호국과의 협조사무 등으로 하루종일 바쁘게 움직인다.
KYCC 로고의 상징은 초록색 나무다. 그동안 암담한 상황에 처했던 많은 청소년과 그 부모들이 이 초록색 나무의 시원한 그늘에서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희망을 되찾는 것을 보았다. 앞으로 KYCC 상담부가 더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는 더 큰 나무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한인사회 여러분의 지속적인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린다.

신혜선
전 KYCC 카운슬러
아동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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