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와인 맛 좌우하는 ‘마술사’

2006-07-12 (수)
크게 작게
생략할 수 없는 양조 과정
어떤 종류 넣느냐 따라
섬세한 맛의 차이 결정

와인을 만들 때 포도 외에는 아무 것도 넣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실은 꼭 한가지 들어가는 이물질이 있다. 바로 이스트, 즉 효모이다.
효모는 밀가루 반죽을 부풀려 빵을 만들 때 많이 사용하지만 맥주와 포도주를 만들 때도 꼭 필요한 성분이다. 효모가 있어야 알콜 발효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즉 포도주스가 포도주가 되려면 효모가 필요한 것이다.
효모는 무성생식한 미생물로서 식품(혹은 열매) 속의 당분을 먹고 알콜과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내는데 이것들이 발효와 부풀리기를 한다. 즉 포도즙에 이스트를 넣으면 발효하여 알콜을 만들어내고(이산화탄소도 어느 정도 남는다), 밀가루 반죽에 이스트를 넣으면 이산화탄소를 만들어 반죽을 부풀린다.(알콜은 빵이 익을 때 다 빠져나간다)
그런데 옛날에는 따로 이스트를 넣지 않고도 포도주를 만들었다. 포도열매 껍질에 자생하는 미생물, 즉 자연효모들에 의해 자연발효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좋은 원료와 기술로 자연효모보다 발효 능력이 훨씬 우수한 양조효모를 배양, 이를 이용하고 있다.
포도즙에 효모를 첨가한 1차 발효는 8~10일 정도 걸리며, 이 과정에서 박테리아의 성장을 막기 위해 이산화황(sulfur dioxide)을 넣는다. 와인을 마시면 머리가 아프다는 사람들이 가끔 있는데 그 이유는 이산화황에 민감한 체질이기 때문이다. 첫 발효가 끝나면 껍질을 걸러내고 포도즙을 따라내 다시 20일에서 한달 정도 발효시킨다. 그동안 당분을 먹고 죽은 이스트 찌꺼기들이 밑으로 가라앉게 되며 위의 맑은 포도주만 저장 탱크로 옮겨져 저장과정이 시작된다.
와인을 마실 때 이스트나 이스트 찌꺼기가 남아있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스트는 당분을 먹으면서 다 죽어버리고, 그 시체인 찌꺼기는 후에 필터링을 통해 다 걸러지기 때문이다. 와인 병에 필터드(filtered)라고 쓰인 것은 이스트 찌꺼기를 걸러낸 것이다. 최근에는 언필터드(unfiltered) 와인도 자주 볼 수 있는데 여기에는 이스트 찌꺼기가 조금 남아있을 수 있지만 거의 느낄 수 없는 정도이며 맛에는 영향이 없다. 자연적인 맛을 추구하는 와인 메이커들은 오히려 필터링을 하면 와인의 맛이 변할까봐 언필터드를 선호하기도 한다.
한편 발효 도중 이스트가 당분을 다 먹어치우기 전에 발효를 정지시키면 당분이 남아있게 되므로 와인의 맛이 달게되는데 이것이 디저트 와인을 만드는 방법이다. 반면 이스트가 당분을 남김없이 먹어버리면 알콜도수가 높아지면서 단 맛이 없는 드라이 와인이 된다.
와인 양조과정에서 이스트를 넣는 것은 하찮은 과정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사실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어떤 이스트를 넣느냐, 언제 넣느냐, 얼마만큼 넣느냐, 어떤 온도에서 발효시키느냐, 얼마나 오래 발효시키느냐, 등등에 따라 와인의 맛이 많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정숙희 기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