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유럽 여행의 참 맛

2006-07-0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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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시즌이 되어 유럽에 여행가는 분들이 많다. 그분들에게 좋은 문화재를 구경하시라고 소개하고 싶다. 내가 그곳에 살 때 가장 좋아한 곳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학생 시절에 내가 유럽을 여행하며 특히 애정을 가지고 관찰했던 건축물은 11세기에서 12세기 사이에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들이었다. 고딕 양식처럼 천장의 아치가 십자로 교체되지 않고 그대로 둥근 것이 특징이며, 조각들이 말할 수 없이 정교하고 순수하고 소박하면서, 벽화와 기둥들에 칠해진 색깔이 아직도 선명히 보이는 성당들도 있다. 이런 문화재들은 전쟁의 피해를 적게 입은 시골에 많이 남아있다. 특히 내가 살던 파리에서 몇 시간 내에 갈 수 있는 부르고뉴 지방이나 프랑스 중부의 산간 지방, 또는 대서양 쪽의 쌩똥쥬 지방에서 좋은 성당들을 많이 보았고, 그 감동을 아직도 생생히 간직하고 있다.
이런 문화재들은 들판의 자연과 하나가 되어서, 파리 한복판의 노트르담 대성당처럼 거대한 도시 건물의 하나인 성당들과는 대조적이었다. 그 중에서도 내가 특별히 여러 번 찾아간 곳은 부르고뉴 지방의 작은 도성 베즐레와 그 언덕 꼭대기에 있는 마들렌느 성당이다.
파리에서 리용으로 가는 남쪽 고속도로 A6를 타고 200여 킬로 내려가서 아발롱 출구에서 내려 서쪽으로 20여 킬로를 지방도로로 가면, 언덕 위에 성당을 향해 올라가며 펼쳐진 소읍이 베즐레이다. 이곳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 유산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12세기에 분홍 돌로 지은 이 수도원 성당은 부르고뉴 양식으로 문과 기둥들에 새겨진 조각들로 유명하지만, 역시 성당 내부의 구조가 깊은 인상을 주는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이 독창적이다. 성당의 주위를 돌며 그 건축 전체의 아름다움을 구경하고, 안으로 들어가 훼손되지 않은 조각들을 바라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게 속세를 떠나 중세 예술의 경지 속에 파묻힌다.
가운데 문 위 편에 조각된 예수상과 사도들도 몸 전체로 단순하면서도 경건한 인간상을 나타내고, 기둥머리에 조각된 성경 속의 인물들은 큰 얼굴에 작은 키로 물결처럼 주름진 옷을 입고 우리를 똑바로 쳐다보는 시선으로 이루 말할 수 없이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표현을 전달한다.
9세기에 베네딕토 수도원 주위에 생긴 이 마을은 오랫동안 명승지가 되었다. 12세기에 성 베르나르가 이곳에서 십자군들에게 설교를 했고, 프랑스의 여러 왕들과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가 왔고 또 성 루이 왕이 순례를 했던 곳이다. 그래서 포르투갈의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 길에 들리는 제일 중요한 성당 중의 하나가 되었다.
성당이 있는 언덕 위에서 성벽 아래로 내려다보면 그 지방의 산과 들, 나무들과 경작지들이 한 눈에 다 들어온다. 이 마을의 집들 역시 그 역사와 함께 중세서부터 간직되어 온 조각된 돌집과 벽돌색 지붕으로 하여 멀리서 보면 도시 전체가 언덕 위에 펼쳐진 벽돌색 유적지 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다.
성당 앞에서 뚫린 가장 큰 길이 마을 아래까지 뻗쳐 있고, 그 양쪽으로 작은 골목들과 집들이 펼쳐져 있다. 이곳은 도기 생산으로도 유명하다. 곳곳에 도기 제작소가 있어 만드는 과정을 구경하고 생산품을 살 수도 있다.
프랑스에 살 때에 나는 적어도 2년에 한 번씩은 베즐레를 방문했고, 역시 로마네스크 성당들과 그 조각들이 유명한 부근의 쏘리유, 오떵 등지를 구경했다. 작지만 다리와 성벽, 성당, 건물 등이 중세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소도시들도 많고, 옛날 수도원들의 옛터도 방문할 수 있는 곳이 부르고뉴 지방이다. 중세 프랑스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종교 예술과 문화를 간직한 이곳에 다시 돌아가 보고 싶다.

이연행
불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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