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 엄마’의 아들, 이창래

2006-06-2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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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내티의 멀켄털 도서관(Mercantile Library)에서 작가 이창래 초청강연이 있었다. 10년 이상 젊어 보여 청년만 같은 한인 2세. 흰머리의 중장년 지식층 미국인 150여명 앞에 서서 고도화된 매개체와 정보기기 속에서의 책의 역할과 중요성을 강조하고 언어의 시각적 요소가 책의 생명을 지킬 것이라 강의하는 그가 한인으로서 여간 자랑스럽지 않았다. 작가가 지적, 예술적이 아닌 지리적 공동체의 일원으로 분류됨을 꺼리는 것엔 나 역시 동의하지만, 그가 단지 한인이기에 내 마음이 더욱 뿌듯해져 옴은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이 도서관은 현재 뉴욕, 세인트루이스, 신시내티 등에서 회원제로 독립 운영되는 비영리 고급 사립도서관이다. 19세기 초 젊은 상인들이 중산계급 청년층을 상대로 지식과 과학적 기술을 발전시키고자 설립했는데 남성에게만 회원자격을 주다가 1세기 전부터 여성도 포함했다. 지식층 도서만 구비, 대출하고, 지식인들의 강연, 콘서트, 연수교육 등을 제공하는 격 높은 도서관이라 강사로 초빙됨은 심상한 일이 아니다.
청중 다수가 그의 책을 읽지 않은 것 같아 섭섭했으나, 소위 지식인들이 그의 이름만 듣고 20~25달러씩의 입장료를 내며 도서관을 메운 유명세가 실감나 더더욱 자랑스러웠다. 강연이 끝나자 책을 사서 사인 받는 사람들이 그의 앞에 길게 줄을 이었다.
이창래는 3살 때 이민와서 예일대와 오리건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후 잠깐 증권분석사로 일을 했다. 소설발표 후엔 뉴욕 시립대 헌터칼리지 창작과 학과장을 지내다가 2002년부터 현재까지 프린스턴 대학 인문학 및 창작과정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95년에 발표한 첫소설 ‘영원한 이방인(원제 Native Speaker)’은 한국계 이민 2세 사설탐정이 미주류 사회에 들어가기 위해 겪는 고뇌를 다룬 작품으로, 헤밍웨이 재단/펜 문학상, 콜럼버스 이전(以前) 재단의 아메리칸 도서상, 반즈&노블 신인상, ALA의 특별도서상 등 미국 문단의 주요상만 6개를 수상했다.
1999년에 출간한 ‘제스처 라이프’는 군인시절 목격했던 한국인 여성 종군 위안부의 한맺힌 절규를 기억하는 한국계 일본 노인의 내밀한 생각들을 성찰한 작품으로, 아니스필드-울프 도서상, 구스타버스 마이어즈 재단상, NAIBA 도서상, 아시아-아메리카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뉴욕타임tm는, 그가 이 작품을 통해 ‘미국문단의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했고, 권위있는 문화교양지 ‘뉴요커’는 그를 ‘40세 미만의 미국 대표작가 20명’ 중 하나로 선정했다.
2004년에 출판한 ‘가족(원제 Aloft)’은 은퇴한 이탈리아계 미국인의 정교한 심리묘사를 통해 현대 가족간의 의무와 책임 회피가 낳는 오해와 갈등을 성찰하면서 가족의 영속적 가치를 확인하는 과정을 그렸다. 타임지는 ‘놓쳤을 수도 있는 양서 6권’ 중 하나로 선정하여 극찬했다.
현재 그 중 두 작품이 영화화되고 있는데 책의 영화화가 불안하지 않는냐는 질문에, ‘제스처 라이프’의 대본은 자신이 직접 쓰고, ‘가족’은 ‘The Hours’를 감독한 스테판 델 드라이(Stephen Daldry)가 감독하기 때문에 걱정 없이 완전히 맡겼다고 했다.
어떻게 책과 가깝게 되었냐는 질문에는, 어머니가 어릴 때부터 이 도서관, 저 도서관을 데리고 다녀서 책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했다. 책이 좋아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는데 아침에 혼자 도서관에 내려주고 저녁때 픽업해준 날도 많았다며, ‘한국 엄마’니까 그렇지 않았겠냐 하자 청중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크게 웃었다.
그런데도 ‘가족’속에 그려진 ‘한국 엄마’는 그와 정반대여서 재미있다. 자식 교육에 헌신적인 건실한 엄마는 현실에서나 중요한 인물이지, 소설속 인물로는 그닥 흥미롭지 못할 터이다.
한국어가 수월치 않다는 그에게 2년전 한국신문에서 오려 놨던 그에 관한 기사를 건네주며 어머니께 전해 달라 부탁했다. 마침 어머니날 낀 주말이라, 부러운 ‘한국 엄마’ 애독자로서 그의 어머니께 드리는 선물(?)이었다. 유명작가 아들에 대한 신문기사는 백몇 번을 읽어도 자랑스럽고 흐믓하실 터이니.

김보경
북켄터키
주립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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