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종교인칼럼/ 평화를 위한 기도

2006-06-13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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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환목사(빛과 사랑 발행인)

우리 한국 사람의 인사말은 “안녕하십니까?”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인사는 “살롬”(Shalom)입니다. 안녕과 살롬은 같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뜻은 평화입니다. 일시적, 불완전한 평화가 아니고 영원하고 완전한 평화를 말합니다.

몸과 마음이 아무 탈 없이 평안하고, 생명과 재산이 안전하게 지켜지고, 가정과 사회와 국가가 바른 질서 위에 안정되어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참 평안이고 참 평화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27)


평화를 위한 인간적인 노력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류역사 4천년동안에 깨어지지 않은 평화조약은 10여회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역사학자의 통계에 따르면 2만 번 이상의 전쟁으로 40억이나 되는 귀한 생명이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이제까지 생존한 인류의 25%가 전쟁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평화에 관한한 인간의 노력은 실패
한 셈입니다. 그래서 마틴 루터는 “평화는 인간의 노력으로 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에 달려있다”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두 가지 부류로 나눠진다고 봅니다.
첫째는 “평화를 만드는 사람”(Peace Maker), 둘째는 “평화를 깨뜨리는 사람”(Peace Breaker)입니다.

우리가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사랑, 둘째는 겸손, 셋째는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원수를 사랑하는 초월적인 사랑을 할 때 평화는 반드시 이루어 질 것입니다. 다음은 겸손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것처럼 우리가 남을 섬길 때 반드시 평화가 이루어 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평화를 위한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아씨시의 프란시스코 수도사가 ‘평화를 위한 도구’로 써주시라고 기도한 것처럼 우리도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주여,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 하소서.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며, 주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영생을 얻게 하소서.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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