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재미동포 그리고 재중동포

2006-06-1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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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지도 게임을 해 본다. 먼저 세계지도 한 장을 구해, 태평양상에 그려진 날짜 변경선부터 찾아내야 한다. 찾았으면, 일단 서울에다 빨간 연필로 표시를 한 후, 그 날짜 변경선을 축으로 서울의 대칭점이 어딘지 확인해 보라. 신기하게도, 그 대칭점이 바로 로스앤젤레스다.
이 곳 재외동포재단 임원직을 맡고 나서 심심풀이로 개발(?)해 본 게임이지만, 그 놀이를 할 때마다 내가 번번이 느끼는 건, 우리의 미국 이민이 왠지 예사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어떤 숙명에 따라 치러졌다는 생각이 든다. LA는 우리 미국 이민사의 상징적 거점 아닌가.
게임을 한 번 더 해본다. 이번에는 압록강과 두만강을 찾아야 한다. 거의 일직선상에 놓인 두 강을 축으로 한반도를 한번 뒤집어 보라. 거기, 거꾸로 물구나무 선 한반도와 부딪치는 부위가 어딘지를 확인하는 게임이다. 길림성과 요령성, 그리고 멀리는 흑룡강성에까지 닿는 이 지역은 지금 재중 동포 230만 가운데 80% 이상이 밀집해 살고 있는, 소위 중국의 동북 3성(省) 바로 그 곳이다.
이민 간 사람들은 일단 정착하면 그 곳 시민권자(미국) 또는 공민(중국)으로 살 뿐이라 자랑처럼 말하지만, 서울에서 그들을 보는 시각은 약간 다르다. 흡사 출가한 딸을 보는 심정이다. 앞서 지도게임에서 드러났듯, 그들의 시가 댁이 어디든 늘 한반도 또는 서울이라는 친정 집과 유관한 곳으로 보기 십상이다. 말을 바꾸면, 동포를 바라보는 서울의 시각이 그만큼 다양하고 성숙해졌다는 표현도 된다.
출가한 딸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의 주시하고, 여기에 외국의 새로운 이민학 원리까지 접목시켜 가능한 한 포괄적으로 보고 싶어한다. 이곳 서울의 몇몇 이민학 원리를 소개한다.
먼저 ‘동결 현상’(Frozen Phenomena). 재외 동포들이 조국을 떠날 때의 머리를 그대로 갖고 있는 현상을 말한다. 조국도 변하였고, (조국을 보는) 거주국의 시각도 변하였으나 동포들만은 조국을 떠날 당시의 생각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예컨대 러시아 동포는 그들의 이민이 본격화 됐던 한일합방 당시의 생각을, 또 재미동포는 이민을 떠나던 1960년대 또는 1970년대의 생각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두 번째가 ‘시계 추 원리’(Pendulum Theory)다. 동포 1세와 2세, 그리고 3세에 차이가 있다는 얘기로, 그것이 마치 시계의 추와 같이 좌우로 진동한다는 것이다. 1세는 조국 지향적인데 반해, 2세는 타국에서 고생하는 것이 부모가 이주하였기 때문이라 여겨 부모와 정 반대로 나아간다.
3세가 되면 부모와 반대로 나가기 때문에 다시 1세와 같은 방향이 된다. 우리 교민이 살고 있는 곳 어디서나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재미동포 사회는 아직껏 1세가 지배하기 때문에, 또 중국과 러시아의 경우 사회주의라는 특수한 체제하에 오랫동안 갇혀 지냈기에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또 한 가지, ‘적응곡선 이론’도 흥미롭다. 일명 ‘√이론’으로 알려진 이 논리는 미국 노던 일리노이 대학의 허원무 교수가 정립한 이론으로, 이민들 거의가 3년의 어려운 과정을 겪어 최저치에 이른 후, 다시 상승곡선으로 전환하는데 7년이 소요되고, 그리고 나서야 안정기에 이른다는 논리다.
지난 주 서울에서 열린 세계 한인회장대회를 지켜본 후 이 글을 쓴다. 재외동포재단 주관으로 올 해 일곱 번째 열린 이번 대회에는 250명의 세계 전 지역 한인회장들이 참석, 김영근 워싱턴 한인회장과 백금식 중국 한인회장을 공동의장으로 선출했다. 미국과 중국 두 나라 한인 회장이 공동의장으로 뽑힌 건 전례 없는 일이다.
두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 수효를 합치면 근 500만으로, 700만 해외동포 전체의 70%에 이른다. 툭하면 경쟁관계로 바뀌는 우리 생리에 비춰 두 지역 한인회장이 당선 후 서로를 끌어안는 장면을 지켜보며 속으로 흐뭇했다. 동포의 시각도 서울 못지 않게 성숙해 있음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이론 소개로, 재외동포재단 이광규 이사장의 저서 ‘동포는 지금’을 인용했음을 부기한다.

김승웅
한국 재외동포재단
사업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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