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주말이면 동네에서 가까운 식물원을 찾는다. 한주 동안의 스트레스도 풀고 신선한 새벽공기와 따사로운 햇볕, 그리고 싱그러운 나무, 철철이 바뀌는 각종 색깔과 모양의 아름다운 꽃을 감상하며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몸과 마음을 건강하기 위해서 이 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으랴.
돈도 필요 없고 오로지 걸을 수만 있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곳을 바로 집 옆에 두고서도 왜 자주 찾지 못하는 것일까. 놀라운 것은 이 아름답고 좋은 꽃 공원에 한인들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주말 아침이면 중국인만이 이곳을 채운다. 이들은 곳곳에서 음악이나 구령에 맞추어, 아니면 몸을 유연하게 돌리면서 움직인다. 이런 모습은 이제 플러싱에 사는 한인들에게는 전혀 낯설지가 않다.
그만큼 중국인들의 국민체조 물결은 플러싱 일대를 주말 아침이면 공원마다 수놓는다. 그것도 모자라 꽃 공원 입구에는 늘 몇 쌍의 중국인 남녀들이 사교댄스를 음악에 맞추어 배우며 장소를 십분 활용한다. 우리 한국 사람들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미쳤나? 새벽부터 남녀가 부둥켜안고 돌아가게” “정신없는 사람들이야, 창피한 줄도 모르고...” 워낙에 남의 이목과 체면치레를 의식하며 살던 우리들인지라 만일 우리 중에 누가 이런 것을 한다 치면 아마도 손가락질할 것이 뻔하다. 그래서 아예 하지도 않을 뿐더러 또 한다 해도 나무라며 못하게 막을 것이다.
플러싱 중심에 자리 잡은 이 공원은 언제부터인가 마치 중국인들만의 공원처럼 돼 버렸다. 소리없이 플러싱 중심부가 이들의 차이나타운이 되었던 것처럼... 식물원은 분명 이 일대 사는 모든 인종들을 위한 곳인데 어째서 이렇게 되었을까? 한인들은 이들이 공원을 마음껏 즐기고 이용하는 동안 대체 무얼하고 있는 것일까. 일을 너무 많이 해 피곤해서 잠을 더 자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런 곳에 아예 관심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일찍 일터로 향한 것일까.
우리 한국인은 흔히들 ‘자갈’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중국인과 일본인은 ‘흙’이라고 표현한다. 이 말은 흙은 물만 조금 개면 벽돌도 만들고 해서 활용이 되지만 자갈은 개별적으로는 단단해도 이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망치로 부수어야만 된다. 그만큼 개성이 강하다. 반면 인구나 영토면에서 대국인 중국인들의 마음은 나라나 인종만큼이나 넓고 대범하다. 그래도 우리는 늘 중국인들을 보면 우리 보다 왠지 허름하고 꾀죄죄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행색을 가난하고 초라하게 본다.
사실 우리 한국인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답고 화려하고 멋있는가. 그만큼 우리는 겉에 드러나는 모습을 중시하기 때문에 실속은 없더라도 우선 외관상 보이는 곳에 돈이고 시간이고 모든 것을 중시한다. 말하자면 중국인의 경우 실속위주이나 우리는 겉치레에 온통 시간과 돈을 소비하는 습성이 모두 배어 있다. 그리고 겉에 보이는 모양과 모습에 그 사람을 측정하곤 한다. 그러나 어디 중국인들은 그러한가.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외모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적든 크든 한 다리 끼워주어 미국의 자본주의 주식시장 형성과정처럼 파트너십을 만들어 목표인 부동산을 사들인다. 그리고는 같이 살며 경비를 절약한다. 그러나 한국인은 돈만 벌면 큰 집 사고 좋은 차사고 한다. 그러다 비즈니스가 잘못되면 모든 게 빈탕이다. 그러다 보니 한인 경제의 중심이던 브로드웨이 도매상은 물론, 한인들의 젖줄인 청과, 세탁, 네일 업계도 소리 없이 하향 길을 가고 있다.
실속을 위주로 사는 중국인들은 우리 터전이던 플러싱 메인 스트릿을 어느 샌가 잠식하면서 한인들을 밀어내고 이 지역을 제2의 차이나타운으로 무섭게 만들었다. 이런 힘은 또 브루클린을 뉴욕의 제3의 차이나타운으로 만드는데 소리 없이 모아지고 있다 한다. 이런 중국인들의 저력을 보면서 식물원에 드나드는 이들의 결집력이 결코 예사로 보여지지 않는다. 그들은 무엇을 꿈꾸는 것일까.
여주영
뉴욕지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