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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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가면

2006-06-0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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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 시인

이민 초기, 거의가 다 20대, 아니면 30대란 나이를 들고 미국을 찾아왔다. 들고 온 나이 속에는 희망도 있었고 꿈도 있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각오로 흘린 몇 가마의 땀이 거리에서 채 마르기도 전에 구경도 못하고 지나간 많은 시간, 어느 사람은 그 꿈을 어느 정도 이루어 놓았고 어떤 사람은 불행하게도 꿈과는 만리 거리에서 아직도 허덕이고 있다.
꿈을 현실로 이루기 위해서 아무도 어서 오라는 손짓도 없이 겨울이면 눈만 많이 내리는 시카고로, 어떤 사람은 사철 더운 LA로, 또 어떤 사람은 네브라스카의 산골짝 시골의 양계장을 찾아갔고 어떤 사람은 유람선의 잡역부나 심부름꾼이 되는 뱃사람 아닌 뱃사람이 되기 위해서 마이애미로 멀고 먼 바다를 건너 먼 길을 왔다.
복잡하고 바쁘기만 한 바닷가 뉴욕으로는 왜 왔을까? 장사하러 왔을까? 그것도 구멍가게 차려놓고 대부(大富)를 실현해 보려고 뉴욕을 찾아왔을까? 미국에서 살다보면 한국에서 달고 다니던 웃음의 표정이 점점 달라진다. 꿈과 현실이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민을 와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마음으로부터 호탕하게 웃던 처음의 웃음은 다 사라지고 다만 웃어도 웃는 것이 아닌 웃는 모양일 뿐이다.
우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슬퍼도 우는 모습일 뿐, 후련하게 속을 풀어내는 진정한 울음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 대신 남모르게 내뱉는 한숨은 더욱 더 깊어진다. 별 볼일이 없어서 살던 곳을 떠난 사람, 무작정 떠나고 싶어 떠난 사람, 영화 속의 그림 같은 아름다운 미국의 풍경이 동경의 대상이 되어 떠난 사람, 또는 먹고살기 힘이 들어 한국이 싫어서 떠난 사람,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 일찌감치 한국을 떠난 사람들이지만 타향에서 사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비슷하게 많이 변했다.
없어진 표정, 잃어버린 표정, 생활이 어려운 시골에서 일거리를 찾아 서울이나 부산, 아니면 중소도시로 나간 사람들은 명절맞이 귀향 길에서 도시를 찾아 나설 때의 시름이 기분 좋은 웃음으로 바뀌어 차 속이 흥분으로 시끄럽다는데 귀국 비행기 안은 언제나 표정 없는 무거운 침묵으로 가득하다. 왜 그럴까? 헛 꿈을 꾼 탓일까? 받침대 하나 없이 하늘에 떠있는 구름같이 넓고 높은 타향살이 둥둥 떠서 살아왔기 때문일까?
눈이 한번 얇게 내리면 산천의 모양이 하얗게 바뀌는데 두 배, 세배 덧보태어 노심초사로 이끌어온 우리들의 타향살이 모양은 바뀌지 않는다. 아니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하고 아이들이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서 일을 해도 우리들의 마음이 바뀌지 않고 무엇이라고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시름이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
연꽃은 물에 젖지 않는다는 것을 세월이 가면서 더욱 더 절실하게 알게 된다. 겉보기에는 크고 꽃잎의 색깔 또한 아름답지만 뿌리가 박혀있는 시커먼 진창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말없는 연꽃. 뿌리야 어디에다 근본을 두고 살아도 열심이란 단어 하나를 무기로 사는 우리들, 그러기에 미국은 좋은 나라지만 얇은 양말에 감춰진 굳어진 발뒤꿈치가 곧 우리들의 얼굴이 아닌가?
그렇다. 이민생활이 어렵지 않으면 이민이 아니다. 그 동안 속옷이 다 젖도록 열이 오르는 서풍(暑風)도 있었고, 우리를 째려보면서 불어대는 노풍(怒風)도 있었고, 때로는 시기와 질투로 엮어진 강풍(强風)도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훈풍(薰風) 또한 있었다. 뜬 빛은 찬란하나 뜨지 못하고 비껴 가는 빛도 아름답지 않은가? 오로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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