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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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가는 배

2006-06-0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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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객 김성우의 `돌아가는 배`를 읽다보면 만선(滿船)을 이루고 귀항하는 고깃배를 연상하게 된다. 남해의 섬 욕지도를 떠난 소년이 반 백년 넘는 육지 생활을 통해 건져 올린 체험과 지혜가 싱싱한 고기더미처럼 뱃전에 그득하다. 문학 평론가 김화영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필체로 쓰여진” 글이라 평한 이 책은 지금 대학에서 문장론을 가르치는 언론인 황소웅이 매 학기 제자들에게 빠뜨리지 않고 읽히는 부교재다.
작가 김 훈의 `칼의 노래` 역시 예의 만선을 연상시키는데, 주인공 이순신의 영(靈)속에 파고 든 작가는 산화한 주인공을 열반으로 떠나 보내는 귀의선(歸依船)으로 이 책을 활용하고 있다. 김성우와 마찬가지로 우리 시대 최고의 문필가로, 둘 다 한국일보가 배출한 대표 급 선주(船主)들이다.
이 자리를 빌어 두 선주께 삼가 권하고 싶은 부탁이 하나 있다. 귀항한 배의 닻줄을 묶어 놓지 말고 한 차례 더 출항시켜 달라는 부탁인데, 배에 태울 승선 자 이름은 김 요석이다. 독일에서 헤겔과 칼 마르크스를 전공하다 신학으로 선회, 목사가 돼 귀국한 인물이다.
귀국한 김 요석은 모 신학대학에서 1년 남짓 강의를 맡다 곧 잠적한다. 전라도 바닷가의 나병 환자 촌을 찾아 목회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인데, 첫 목회 때 만난 70 중반의 환자가 고름 맺힌 손을 들이대며 “열 여섯에 이곳에 버려져 이 나이 될 때까지 성한 사람 손 만져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는 하소연을 듣는 순간, 그 곳을 떠나지 않기로 결심한다. “나병 환자들은 자기가 죽는 날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어요. 잠에서 깨보면 하루 밤에 너 댓 명 씩 배로 기어와 내 팔을 베거나 배 위에 몸을 걸친 채 죽어있어요”
이 대목에 이르면 김 요석의 목소리는 떨린다. “그들은 죽기 전날 밤 몹시 초조해 합니다. 이런 몸으로도 천당에 갈 수 있느냐 묻고 아무렴, 가고 말고! 라 얘기 해주면 그렇게들 좋아해요. 나병환자가 된 걸 오히려 고마워합니다. 병 덕분에 천당가게 됐다는 거지요”
사지가 멀쩡한 청중을 대할 땐 그는 다음과 같이 절규한다. “여러분, 당신들의 손발은 멀쩡하죠? 그게 바로 이적입니다. 여러분은 매일 그런 이적 속에서 살고 있는 거예요!” 그러기를 8년 남짓, 그는 이번에는 중국 땅을 밟는 재중 동포로 바뀐다.
“그런 병은 없다”는 당(黨)의 공식 발언과는 달리 중국인 나병환자의 수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는 지금 중국의 변방 신강성에 사는 몽고·터키 계 위구르 족 환자를 10년 가까이 돌보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하두 배가 고파 흙을 파 연한 진흙 부위를 먹었는데 얼마 후 맹장염에 걸렸다. 동네에 병원이 하나도 없어 할 수 없이 가축 방역실을 찾아 칼을 빌려 직접 수술을 했으나, 이 마저 덧나 사경을 헤매게 됐다. 온 몸에 종기가 돋고 퉁퉁 부어오른 김요석의 주위에 위구르족 환자 신도들이 모여들어 떨어져나간 팔과 입으로 밤새껏 주무르고 핥으며 안마를 했다.
김요석의 몸뚱이는 환자들의 팔과 입에서 흘러나오는 고름으로 범벅이 됐고, 그 고름이 굳어져 마치 온 몸에 장화를 신겨 놓은 형국이 됐다. 그 `장화`를 벗기고 보니 종기가 싹 가셔있더라는 것. 나병 환자들의 고름이 김요석의 종기를 치유한 것이다.
그가 비교적 안락한 신학자의 길을 접고 생고생을 자초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일단은 그를 연수시킨 독일의 구조 신학 때문인데, 독일의 목사는 우리와는 달리 정부에서 급료를 받는 정부의 고위직 관리이다. 따라서 신의 실존을 믿기보다는 고소득과 사회적 명망에 더 비중을 둘 뿐이다. 김요석 같은 목사들에 대해 독일 신학은 “하나님이 어떻게 생겼더냐. 그 손을 직접 만져본 적이 있느냐?” 고 반문해 왔다. 김요석의 고행은 바로 이에 대한 도전이다. “고름 투성이의 나환자 손, 바로 내가 만난 예수의 손이었어!”
나 역시 한국일보 출신임을 빌어, 두 선주께 김요석의 승선을 거듭 정중히 청원한다. 두 분의 문재(文才)가 더 없이 절실한 시점이다. 사양길에 들어선 유럽의 기독 문명을 다시 정립할 절호의 시점도 된다.

김승웅
한국 재외동포재단
사업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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