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자리에 모인 남북 동화
2006-06-01 (목)
좋은 기획을 하는 분들이 있다. ‘남북한 창작 동화 3권’을 펴낸 출판사의 기획은 매우 뜻깊은 일이다. ‘…지난 광복 이후 60여년 동안 창작된 수많은 남북한 동화들 가운데서 가려 뽑은 68편으로엮었습니다’ ‘남과 북이 갈라져 쓰는 말도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가능하면 고치지 않고 그대로 싣는 것은 북한의 언어 현실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하려는 뜻입니다’ ‘남한의 아동 문학은 어린이의 타고난 천성을 존중하고 그 안에서의 다양한 상상력과 표현을 강화해 온 반면, 북한의 주체 아동 문학은 기능면을 중시하며 어린이의 후천적인 성격 형성에 역점을 두었습니다’
이상은 3권의 각 머리말에서 발췌한 것이다. 이렇듯 특성이 다른 두 지역의 작품들을 한 자리에 모은 귀중한 책이다.
앞으로 남과 북 두 지역의 어린이들은 이 책들을 읽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서로 표현이 다르지만 글에 스며있는 뜻을 느끼게 되면서 상대방을 이해하게 될 줄 안다. 전에 읽은 글 중에 유럽의 어떤 나라의 한 학교에서는 남북한 학생들이 같이 배우는데, 서로 언니, 동생 하면서 지낸다는 것이 있었다. 통일은 어린이들 세계에서 이미 자연스럽게 시작된 것이 아닌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동화의 내용이나 표현도 변해가고 있다. 전래동화는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주고 싶은 교훈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꾸민 권선징악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창작동화는 이야기의 구성이나 전개가 개성적이고 창의적이어서 재미있게 읽는 동안에 어린이들이 무엇인가 느끼게 하고 있다.
동화는 읽는 대상이 어린이기 때문에 밝은 면, 긍정적인 면을 향하고 있다. 설혹 한 때 어두운 면이 있더라도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이 이에 따르게 된다. 동화가 지향하는 것이, 어린이들이 건강한 삶의 힘을 기르게 하고 희망을 가지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동화의 목표 때문인지 ‘동화적이다’ 또는 ‘동화의 세계’라는 표현이 어린이들에게 한정된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런 표현들을 ‘마음의 구김살이 없는 시절’ 천진난만의 세계, 성장의 계절, 희망의 봉오리’등으로 볼 때는 누구나 거기에 오래 머물고 싶게 된다. 그래서 동화에 관계되는 일을 행복의 조건으로 넣고자 한다. 동화에 관심이 있어 가끔 읽는다, 동화책을 가까이 둔다, 자녀에게 동화를 읽어준다, 동화를 쓴다… 등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동화의 주위를 맴도는 생활은 현실을 미화하여 삶을 역동적으로 바꿔 놓는다. 동화는 부드럽고 연약해 보이면서 그 영향이 세계에 미치고 있다.
동화 ‘파랑새’도 옛날부터 지금까지 세계를 날고 있지 않은가. 행복을 찾아다니다 보니 바로 그 행복이 우리 집에 있었다는 메시지와 함께 살아있는 동화이다.
남북한 어린이들의 마음을 동화 읽기로 이어보려는 생각이 신선하다. 얼마나 자연스럽고 슬기로운 접근 방법인가. 두 지역 어린이들이 재미있게 읽고, 무엇인가 느끼게 하는 것이 먼 목표에 이르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그들은 함께 어우러져 살아야 하는 우리들의 미래이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이 책에 수록된 동화 중에 ‘임금들의 마라톤 경주’가 있다. 하늘나라에서 세종 대왕과 네로 황제가 벌이는 마라톤 경주 이야기다.
여기에 역사책에 나오는 위정자들이 조연으로 나와서 온갖 방해를 한다. 작가는 누가 결승점에 먼저 도달하였는지 밝히지 않고 ‘나도 잘 몰라. 여기서 이야기를 끝내겠습니다’라고 글을 마무리하였다.
주제가 새롭고 표현이 세련되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북한 어린이들이 어떤 느낌을 받게 될지 궁금하다. 이것은 최효섭 목사의 창작 동화이다. 미국에 거주하는 동화작가의 작품도 수록되었음이 기쁘다. 미국에서도 여기 저기 한국문단 활동이 활발한데 동화작가가 드문 점이 유감이다. ‘동화의 세계’에 오래 머무는 일이 행복의 조건에 포함됨을 생각할 때 많은 동화작가의 등장을 고대한다.
다음에는 남북한 동화작가와 해외 동화작가의 작품이 합본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허병렬
교육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