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병관의 추억

2006-05-14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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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중 가장 좋은 때를 골라 서울을 다녀왔다. 그동안 남보다 덜 가는 편은 아니었으나 그때마다 행사 참석이나 회사 일을 분주하게 보는 사이 선배나 친구들을 만나고 오는 것이 고작으로, 결코 서울을 벗어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마음먹고 시골을 찾아가 바람을 쐬고 왔다.
그것도 늘 그리던 남도 여행이었다. 한반도의 남녘, 경상남도와 전라남도의 바닷가 도시들은 그 풍광도 빼어나지만 역사와 문화의 숨결이 배어있는 곳이라 언젠가 가보고 싶은 그리운 땅이었는데 이번에 봄이 가득한 계절에 그곳을 다녀왔다.
서울에서 대전과 진주를 거쳐 통영으로 내려간 뒤 거기서부터 남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가면서 고성, 하동, 섬진강, 광양, 순천, 보성, 강진, 해남에 이르기까지 3박4일의 남도기행은 참으로 꿈결같이 아름답고 멋있는 여행이었다.
미국의 서부와 동부지방, 그리고 유럽까지 여러 군데를 여행해봤지만 한국의 남해안처럼 그렇게 아기자기하고 정겨운 곳도 흔치 않은 것 같다. 거기가 내가 살았던 고국이라 그런 것일까.
특히 아름다운 섬진강의 모습은 오래오래 잊지 못할 것 같다.
노령산맥의 동쪽과 소백산맥의 서쪽에 뿌리를 두고있는 섬진강은 광양바다에 이르기까지 경상도와 전라도를 갈라놓으며 550리길을 흘러오는 동안 그 파란 물빛과 강변의 모래빛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남한 땅에 유일하게 남은 공해 없는 강이라고 했던가.
때마침 화개장터를 지나 쌍계사 주변으로는 벚꽃이 지나간 자리에 개나리, 진달래, 목련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강을 건너 광양으로 가면 굽이도는 섬진강으로 매화꽃이 한창이었다.
매실나무들에서 꽃망울이 폭죽처럼 터지는 곳을 찾았는데 마침 거기가 청매실 농원이었고 언젠가 LA에도 찾아왔던 홍쌍리 여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도 좋은 기회였다.
그 다음날 이른 새벽 보성 녹차밭을 찾아가 온몸에 그 풋풋한 녹차의 맛과 향기를 담뿍 담아온 것도 좋았지만 강진과 해남에서 선현들의 그 훌륭하고 그윽한 숨결을 맡을 수 있는 것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18년간 유배생활을 하며 목민심서와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을 저술한 다산초당과 “내 벗이 몇인고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로 이어지는 오우가의 고산 윤선도의 고택 녹우당을 찾아갔을 때 고난과 질곡의 세월에서 오히려 학문과 문화를 꽃피웠던 선현들의 그 인내와 예지에 머리를 숙인다.
이번 여행길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곳으로는 통영에 있는 세병관(洗兵館)을 빼놓을 수가 없다.
1605년 선조38년 당시 6대 통제사였던 이경준이 창건해서 이후 293년간 삼도수군 통제영으로 사용했다는 건물이 세병관이었는데 세병(洗兵)이란 피묻은 갑옷과 병기를 깨끗이 씻어두어 전쟁을 종식시키자는 평화 애호사상의 의미라는 설명을 들으며 새삼 우리 민족의 그 역설적인 평화사랑에 감동을 받는다.
곳곳에 잘 만들어진 도로를 따라 남도여행을 하면서 고국에 대한 사랑과 연민의 정을 함께 담아올 수가 있었다는 게 감회롭다.


김용현 한미평화협의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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