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에 한번 ‘문화의 삶’이라는 글을 쓰면서 나에게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예전에도 좋은 그림을 보면 이것을 누구와 나눌 수 있을까, 이렇게 뛰는 내 마음을 누가 알수 있을까, 아무도 모를거야 하며 혼자서 외로워하는 적이 있었는데 요즘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그림들을 독자와 나누면 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단 몇 명이라도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으면 좋으리라는 생각이 들고 또 분명히 누군가는 내가 그 그림을 보며 깨치던 기쁨을 홀연히 느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림은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서 왜 좋은지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그냥 직관으로 눈이 번쩍 뜨이거나 가슴이 확 열린다. 때로는 그림이 너무 좋아 마음이 아프기까지 하다. 그때는 혼자 보는 게 아까워서인 것 같다.
세상에 대한 믿음이 하나 있다면 누구나 좋은 것을 보거나 들으면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하므로 좋은 게 세상으로 퍼져나간다는 것, 아름다움은 진실한 것이고 언젠가는 아름다움이 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아름다움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누구나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겠지만 그래도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추구하는 사람들에겐 희망이 있다.
새벽하늘의 아름다움. 푸른 하늘을 나는 새들의 날갯짓. 아침햇살을 받는 산빛. 들판에 핀 꽃들. 하얀 나비들. 저녁노을. 달빛. 자연이 아름답지만 사람 또한 아름답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 사람의 미소. 윌셔가를 걷는 젊은 아가씨들의 싱싱한 모습. 어머니의 마음. 때로는 햇빛을 받고 앉아있는 노인의 다 놓아버린 아름다움도 느낀다.
좋은 음악이 있고 좋은 영화가 있고 좋은 그림이 있다. 좋은 시가 있고 그리고 무한한 우주심이 있다. 그림을 그리며 깨달은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그리는 가도 중요하지만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그리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독자와 나누고 싶은 그림 중에서 불가사의하게 아름답고 왜 그 그림이 좋은가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는 그림이 있다.
나는 저녁마다 잠들기 전에 그림책을 보는 버릇이 있는 데 좋은 그림 보는 게 너무 좋아서이고 또 좋은 그림이 무엇인가를 알고 싶어서 수 년째 지켜온 버릇이다. 그러던 중 어느날 추사 김정희의 ‘불이선란(不二禪蘭)’<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눈이 번쩍 뜨였고 가슴에 ‘허걱’ 소리가 나는 듯 했다.
처음엔 분명히 좋은데 도저히 알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결국 그 알수없음이 이 난그림의 맛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좋은 것은 좋은 것 자체의 속성으로 인해 누구에게든 보여주기만 하면 왜 좋은지는 몰라도 언젠가 좋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고 또한 “야, 이 그림이 그렇게 좋은 그림이라는데 왜 좋은 걸까”를 함께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도 참 재미있는 숙제라는 생각이 든다.
70 평생에 벼루 10개를 밑창 냈고 붓 1천 자루를 몽당 붓으로 만들었다는 추사 김정희조차도 희열에 겨워 “우연히 그렸더니 천연의 불성이 드러났네, 문 닫고서 찾고 또 찾은 것 이게 바로 유마(維摩)거사의 불이선(不二禪)이네” 라고 제시를 썼다.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난초그림이 됐다며 자화자찬하고도 성이 안차서 “만약 누군가가 강요한다면 또 구실을 만들고 비야리성에 있던 유마의 말없는 대답으로 거절하겠다. 만향” “초서와 예서, 기자의 법으로 그렸으니 어찌 세상사람들이 이를 알아보며 어찌 이를 좋아할 수 있으랴..” “이런 그림은 한번이나 그릴 일이지 두번 그려서는 안될 것이다. 선객노인” “오소산이 이를 보고 얼른 빼앗아가니 가소롭다”라고 거듭 제를 달았다.
불이선이란 유마경에 나오는 내용인데 모든 보살이 열반에 들어가는 상황을 저마다 설명하는데 마지막 유마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모든 보살들이 말과 글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진정한 법이라고 깨달았다는데 즉 이 작품이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난초그림이 됐다는 것이다.
그의 칼칼한 성격이 드러나는 격조 높은 이 그림을 두고 추사평전을 쓴 유홍준은 이 그림이 거의 입신의 경지로 극단적인 파격으로 추구된 작품이라고 한다.
세상에는 추사를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아는 사람도 없다고 하는데, 독자들과 함께 동양 최고의 명화라는 이 난 그림을 함께 즐기고 기이히 여기며 문화의 향기를 나누고 싶다.
박혜숙
화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