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래 사는 법

2006-05-1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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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신문, 잡지나 방송에 나오는 광고, 선전을 보고 있노라면 이 세상에 병으로 고생하거나 죽을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만 같다. 왜 그리 몸에 좋고 건강을 책임지겠다는 약들이 많은지 걱정을 안 해도 좋을 성싶다.
사실 근래 들어 의술의 눈부신 발달과 각종 좋은 약품들의 개발로 수명이 연장되고 많은 분야에서 질병치료가 향상된 것만은 틀림없다. 우리 주변에서 80, 90세가 넘는 분들을 쉽게 발견하고 예전 같으면 어림없을 병들도 간단한 수술로 생명을 건져내고 있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세계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하여 남자도 80세에 가깝고 여자는 80세 중반에 이르고 있다. 1950년 한국전쟁 무렵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55세 전후였음을 감안할 때 지난 반세기 동안 무려 한 세대만큼 더 연장된 셈이다. 통상 한 세대 하면 30년으로 치고 있는데 이런 추세라면 그것을 50년으로 더 늘려 잡아야 될 것 같다.
연세가 든 사람들도 장수에 적극적으로 신경을 쓰고 있다. 건강식품을 선호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머지 않아 100세, 아니 120세까지 살 수 있다는 희망적인 보고서가 발표되고 있다. 일찍이 진시황이 백방으로 구하고자 했던 불로장생의 영약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희망적인 보고와는 달리 한국은 죽어가고 있다. 한국 정부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출산율이 1.08명이라고 한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로 부부 두 사람이 겨우 1명만 낳는다는 것인데 불과 2년 전 1.22명과 비교할 때 해마다 그렇게 급감하고 있으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강대국이 되려면 최소 인구가 1억명은 되어야 한다. 조금 낳고 오래 살면 그 결과가 어떤지는 불문가지이다. 지금 같은 현상이 계속된다면 50년 뒤에는 한국 인구가 절반 가량으로 줄어들게 되고 그 결과 남녀비율, 생산, 조세, 국방 등 사회 전반적인 부문에 심각한 불균형이 발생하고 세상은 온통 나이 먹은 사람들로 북적이게 될 것이다.
지금 한국은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늙어간다는 것은 죽어 간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한국은 결국 2류 국가로 쇠락하고 말 것이며 옛날 이조시대 처럼 이웃 강대국 눈치나 살피며 사는 불쌍한 처지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을 외치던 젊은 함성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이다.
사람이 오래 산다는 것은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 기쁨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때 더욱 의미가 있는 법이다. 그렇지 못하고 후대들의 미래와 발전에 부정적 요소로 작용되거나 건강하고 생산적인 공동체를 이루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그 삶은 축복은커녕 오히려 짐이 되고 수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생애는 개인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회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이 있겠지만 사람들의 장수가 결혼을 늦추게 만들고 출산율을 저하시키는 이유의 하나 가 된 것만은 명백하다. 이런 면에서 보면 오래 사는 것에 너무 욕심을 갖는 것도 좋아만 할 일은 못되는 것이다.
사적인 이야기지만 필자는 희망수명을 77세에 두고 생명보험도 그 나이까지 들어 있다. 인간이 수명이 무한대라면 더 살려고 욕심을 내보고 싶지만 아무리 의약품이 잘 만들어지고 의술이 발달되어도 인간은 결국 왔던 곳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그런데 10년, 20년 더 산다고 무슨 큰 보람이 있을까?
지나온 세월을 생각하면 눈 깜빡할 사이에 그 날이 돌아올 것이고 그것도 하나님께서 봐 주셔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열심히 살다가 적당한 때 인생을 접는 것이 자녀와 이웃에 도움이 되고 가장 오래 사는 길이 아닌가 생각된다.

조만연
수필가·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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