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리한 눈빛으로 묘사된 삶의 풍속도
2001년 ‘칼의 노래’로 동인문학상을, 2003년 ‘화장’으로 이상문학상을, 2005년 ‘언니의 폐경’으로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한 늦깍이 작가 김훈의 첫 소설집이다.
저자의 첫 단편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화장’은 뇌종양 아내의 병수발을 하는 초로의 남자가 나이 어린 동료 직원에게 연정을 품은 심리를 그린다. 원피스 옷깃 사이로 드러난 그녀의 빗장뼈와 그 위로 드러난 푸른 정맥에 마음이 떨려 그녀를 바라보기만 할 뿐,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한다.
또한 병들고 시들어가는 여자의 몸에 대한 저자의 묘사는 적나라하고 섬뜩하리만큼 치밀하여 새삼 우리가 언젠가는 소멸해 없어져갈 몸을 가진 존재라는 인식이 선명하게 든다.
소설집의 제목인 ‘강산무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간암으로 조만간 죽을 운명에 처한 전직 대기업 상무 김창수가 산책길에 들른 박물관에서 우연히 보게 되는 ‘강산무진도’는 그에게 너무 깊은 감동을 선사한 나머지 ‘미열’을 느끼게까지 한다.
긴 화폭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 강산은 신들이 잦아지는 골짜기마다 다시 들어선 마을과 그 마을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펼쳐지는 들판, 그리고 그 들판 가장자리부터 다시 일어나는 산맥 등을 모두 한 화폭에 담으며 존재 “혼자서 가야 할 가없는 세상과 시간의 풍경”을 재현한다
그 외에도 중소기업을 경영하다가 영업용 택시기사가 된 남자의 이야기 ‘배웅’, 등대지기 일을 그만 두는 사람과 새로 맡게 되는 두 명의 남자 이야기 ‘항로표지’, 치매로 고생하는 어머니를 둔 중년 형사의 이야기 ‘고향의 그림자’, 남편을 잃었거나 남편과 헤어진 두 여자 이야기 ‘언니의 폐경’, 복싱 챔피언에 도전하는 승려 출신 환속 젊은이를 그린 ‘머나먼 속세’ 등 총 8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현대의 네안데르탈인들이 세속도시를 견디고 기어가며 부유한 흔적들, 하나의 생이 넘어진 곳에 다시 다른 생이 시작되고, 한번도 예기치 못했던 또 다른 일상이 펼쳐지는, 당대를 배경으로 한 인류의 영원한 삶의 풍속도를 예리한 눈빛으로 정확하게 묘사하여 결국은 무(無)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실존을 깨우치게 한다.
김 훈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