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하버드·프린스턴·예일

2006-05-0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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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서른 살이된 나의 첫째 아들은 현재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며 열심히 보람된 삶을 살고 있다.
공부를 좋아하고 잘하는 제커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사람들은 제커리가 공부를 잘하였으니까 입학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정반대이다. 부모와 함께 한 지붕 밑에 사는 고등학교 마지막 해, 입학원서를 준비하던 그 해에 아들은 무척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초조하게 살았다. 왜냐하면 ‘아이비리그’ 입학 문제로 아들은 매일 그의 어머니를 마주칠 적마다 입학원서에 관한 질문, 독촉, 힐책을 당하면서 살아야 하였기 때문이다.
자녀를 일류대학에 보내야 한다는 한인 어머니를 가진 덕분에 나의 아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하버드, 프린스턴, 예일’하면서 속삭이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자랐다. 이상하게도 아내는 아들이 자랄 때 ‘의사, 변호사’하며 직업을 언급한 적이 없고, 항상 ‘하버드, 프린스턴, 예일’이라는 말을 자주 하였다.
그래서인지 아들은 고등학교를 끝마칠 즈음 대학 선택을 할 때 어떤 직업에 관한 관심보다는 어느 곳에 있는 대학을 선택하느냐에 관심을 두었다.
1994년, 하버드 조기입학 원서 마감날인 12월31일로 돌아가 보자. 아이와 엄마 사이에 있었던 ‘아이비리그 광기’가 그 날 극치에 달하였던 것으로 나는 기억하고 있다.
겨울방학을 맞이한 아들은 음악을 하는 친구들과 이곳 저곳으로 초청을 받아 공연을 다니며 크리스마스 시즌을 즐기는 동안 입학원서 마감 날이 다가왔던 것이다. 아들은 공부를 잘했지만 미적미적 늑장을 부리는 버릇이 있다.
원서 마감 날 그의 엄마는 아들에게 입학원서에 대하여 물었다. “아직 준비 못했어요”라고 대답을 하면서 서두르는 기색이 없는 아들을 보면서 아이 엄마는 소리를 지르면서 벌떡 일어나 이층 패티오 발코니로 걸어나갔다.
“제커리, 오늘 입학원서를 부치지 않으면 나 이 발코니에서 뛰어내려 버릴 거야” 하였다. 자기 엄마의 위협이 효력을 냈는지 아들은 서둘러서 원서를 준비하였다.
우체국 문을 닫기 몇분전 나는 아들과 함께 우체국으로 가서 ‘12월31’일 날짜가 봉투에 찍히는 것을 확인하며 하버드 대학 조기입학 서류를 보냈던 기억이 난다.
매년 봄, 이맘때면 많은 한인부모들의 관심이 대학 입학이다. 얼마 전 남가주에 사는 하버드 대학 조기 합격한 여학생과 그녀의 엄마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원서 마감날이 다가오는데도 서류준비를 하지 않고 꾸물대는 딸을 보고 화를 참지 못한 한인 엄마가 딸을 때려 폭행죄로 체포되고 기소되었다는 기사이다.
만약에 엄마가 감옥에 가게 되면 하버드에 들어간 딸의 학비를 누가 낼까 하고 엉뚱한 염려를 하는 아내에게 12년전 우리 집의 아이비리그 ‘발코니 사건’을 이야기하였다. 아내는 나더러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전혀 기억에 없단다.
신문에 난 두 모녀의 관계가 어떤 관계일까. 이 기사가 아이비리그를 갈망하는 한인 부모들에게 좋은 교훈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나의 아들은 하버드 대학에 조기입학을 하지 못하였다. 물론 그와 그의 어머니의 실망이 컸다. 아들은 우리 집에서 한 시간 떨어진 명문 사립대학에 입학하였다.
내가 짐작하기로는 아들의 실망은 대학이 집에서 가까웠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교육학 박사·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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