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의 출퇴근 길

2006-04-1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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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한국일보에 126번(한국 참전용사 기념도로) 도로 주변 풍경이 상세히 소개되어 기뻤다. 그 길은 근 8년 내가 출퇴근하며 다니는 길이다. 편하고 경치도 좋아 느슨하게 감상하며 노래 같지 않은 노래도 마음껏 부를 수 있다.
벤추라카운티 부근에는 강 건너 작은 산 뒤로 젖소 목장이 있어 대개 이른봄이면 새끼들과 함께 젖소 떼들이 풀려 나온다. 그리고 그 외 지역 일대엔 채소밭들이 많다. 채소밭엔 가끔 30~40명의 멕시칸 일꾼들이 비닐 바지를 입고 땅위에 무릎 끓고 손으로 직접 채소를 뽑아 상자에 담는다.
LA 카운티 경계를 지나 완만한 고개를 넘어 벤추라카운티 깊숙이 들어서면 오렌지 과수원이 시작된다. 오렌지 과수원이 굉장히 많았는데 약 2년 전부터 과목나무를 뿌리 채 들러 엎어 말려서 태운 후 원예원, 피망고추밭, 딸기밭, 채소밭, 아기과목으로 바뀌어 가는 걸 많이 본다.
바다 쪽 가까이로 가면서 아보카도와 레몬 과수원이 많아진다. 118번 길엔 레몬 과수와 딸기밭이 많다.
일년 중 가장 아름다운 때는 단연 봄이다. 겨울비가 충분히 왔을 때 2월부터 점차 해가 길어지면서 출퇴근길에 푸른 산색을 보게 되면 가슴이 설레고 저절로 감탄사가 터진다.
나는 나무들의 다양한 연두색의 색상들을 즐겨 감상한다. 3월쯤이면 달콤한 오렌지과 꽃향내에 취해 버린다. 그 때는 길가에 야생화들도 만발한다. 꽃뿐인가.
구름, 비, 산, 나무, 풀, 벌레, 동물, 달, 별… 그 많은 것을 관찰할 때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는지 신기할 뿐이다.
주말을 도시의 집에서 쉬고 산길로 들어서면 산색의 차이를 느낀다. 5월에 접어들면 푸른 녹색이 변한다. 땅 밑에서부터 황금색으로 시작해서 서서히 산꼭대기로 올라간다.
6월이 되면 산 끝이 누렇게 변한다. 민둥산은 누런 양탄자가 덮인 것 같다. 갈색으로 변하는 산을 바라보면 내 가슴도 갈색으로 타는 듯 하다.
지난해의 폭우로 산사태가 심해서 126번 길이 한때 막혔었고 아직도 이 산 저 산은 산사태로 흘러내린 자국이 많다. 폭우가 있기 전 해의 늦여름엔 심한 산불로 내 마음도 까맣게 타는 듯 했다. 산불 난 후에는 도로변에서 죽은 짐승들을 많이 보게 된다.
나는 산길을 운전할 때 가능하면 음악을 안 튼다. 아니 음악이 귀에 잘 안 들어온다. 내 눈은 바깥 풍경만 열심히 관찰하기 때문인지 개인사, 가정사, 직장일 모두 다 잊어버리게 된다.
주로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왜 이 산은 나무가 있고 저 산은 없을까? 저 나무들 이름은 무얼까? 지금 피는 저 꽃 이름은 무얼까? 강가에 모여 자라는 낙엽수들은 그렇게 물이 필요할까? 비가 많으면 곤충이 왜 많이 생길까? 물도 안 흐르는 강인데 다리는 왜 이리 넓을까? 저 산너머는 어디일까? 저 산밑엔 누가 살까? 저 산길은 어디로 가고 어디서 끝날까?”
그러면서 봄이면 헤맨다. 이 꽃도 따보고 저 꽃도 따서 꽃 사전을 펼쳐본다. 꽃 색과 꽃 향에 내 마음은 날아 갈듯 정화된다. 어느덧 나는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최정순/노스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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