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옥수수 잎에서 물 스프레이까지

2006-03-2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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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한국에 갔을 때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갔다. 나는 온 가족과 함께 한 방문을 기록에 남기고 싶어 꽤 비싼 비디오 카메라를 구입하였다. 작은아들 사이먼의 일곱 번째 생일을 서울에서 맞이하였는데, 우리는 서울에서의 그의 생일파티를 증거하는 비디오를 지금도 가지고 있다.
미국으로 돌아오기 직전 김포공항에서 나는 한국에서 우리 식구들의 마지막 발길을 기록하기 위해 두 아이들에게 물었다. “한국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이 무엇이니?” “할머니랑 이모로부터 선물을 받은 것입니다”라고 동시에 합창하였다. 나는 또다시 “그러면 가장 나쁜 경험은 무엇이었니?”하고 물었다. 큰아들 제커리가 씨익 웃으면서 “사촌 집 화장실”이라고 대답하였다. 작은아이도 덩달아 “그래, 냄새가 무척 고약하다” 하면서 코를 쥐었다.
나는 이 답변이 나올 것이라고 반쯤 짐작하고 있었다. 우리 식구가 서울 처제 집을 방문하였을 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와 아내가 방바닥에 앉아서 대화하고 있는데 사이먼이 나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자기를 좀 따라서 나오라고 신호를 보내왔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였다. 창호지 문을 열고 그를 따라 밖으로 나와서 마당 건너편에 있는 화장실로 갔다. 그는 나더러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물었다. 나의 불쌍한 아들은 생전 처음으로 재래식 변소에 앉아서 용변을 보아야 하였다. 나는 어떻게 일을 보는가를 설명하여 주고 그에게 휴지를 주었다. 사이먼은 그 후에 사촌 집 변소에 대하여 몇 번이나 코멘트를 하였다.
제커리가 그의 사촌에 대하여 조크를 하였다. 화장실에서 30분이 넘도록 만화책을 보았다는 사촌의 말을 믿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아들에게 화장실에 휴지가 있는 것만도 얼마나 다행인가 하면서, 내가 한국에 처음 왔을 적에는 신문지를 사용하였다고 말하였다. 나이 든 고모할머니가 자기가 어렸을 적에는 옥수수 잎을 사용하였다고 말하였다. 아이들은 우리들의 말에 감동하기보다는 메스꺼워하였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떠올리느냐 하면 최근에 나의 아내와 나눈 대화 때문이다. 아내는 10여년만에 한국을 방문하고 며칠 전에 돌아왔다.
나는 그녀의 여행에 대하여 물었다. 아내는 만나 본 사람들과 방문한 곳을 말한 후에 “우리도 한국식 변기를 사야겠다”라고 말하였다.
나는 아내에게 장난스럽게, “우리 집 화장실 바닥에 구멍을 만들어 변소를 만들자고?”고 물었다. “아뇨”하며 아내는 고개를 저었다.
“‘한국에서는 집집마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끝마치면 변기에서 따뜻한 물이 나왔다. 심지어는 고속도로 휴게실의 화장실 변기도 최신식이더라”고 하면서 감탄을 하였다. 아내는 읽고 있던 한국일보 광고판을 내 얼굴 앞에 내밀었다. “이것 봐요. 여기도 있잖아요.”
영어로 이것을 ‘비데’라고 부르며 개인적인 위생처리 방법이다. 나는 프랑스에서 비데를 본 적이 있지만 미국에서는 본 적이 없다. 나는 그것이 미국식이 아니라고 생각하였고 나의 취향으로는 너무 ‘여자’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만약 내가 지금 사이먼 하고 서울을 방문한다면, 나는 사이먼의 어깨를 치며 “이 변기를 어떻게 사용하니”하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국의 급속적 진보에 놀라곤 한다. 한 나라의 진보를 화장실보다 더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다. 생각하여 보라: 지난 50년 사이에 한국은 옥수수 잎에서 신문지로 화장지로 물 스프레이로 발전하였다. 이것이 한국 경제의 기적이다.

교육학 박사·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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