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봄날, ‘부자’가 보내온 편지

2006-03-2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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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정월 보름을 맞아 ‘그 어머니의 보름달’(오피니언 1월10일자)을 보러 전라도에 가려던 나의 계획은 무산됐다. 하필이면 그 때를 맞아 외국 출장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즉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대학 친구가 보낸 e메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 글에 노랫말까지 넣고, 제 화가 친구의 손을 빌려 그린 웬 여인의 그림도 컬러로 담았다. 내 글에 등장하는 어머니를 그린 듯 싶다.
“말코 승웅아, 너 나를 슬프게 만드는구나. 지금 네 어머니의 보름달을 읽고, 빈 운동장에 홀로 남아 점점 멀어져 가는 버스를 바라보는 또 다른 소년 나를 본다. 너만 운 줄 아니? 내가 네가 되었던 시간이었다. 네 글, 화가 친구 홈페이지에 옮기면서, 네가 술집에서 구슬프게 부르던 찔레꽃을 배경음악으로 넣었더니 어찌나 슬픈지… 옛날 부유했던 가난했던 어머니를 그리는 우리 마음은 엄청 부자다. 경삼이가”
친구가 e메일로 음향 처리한 ‘찔레꽃’을 듣자니 이번엔 내가 눈물이 난다. 수십 년만에 흘려 본 눈물이다.
이 풍성한 봄을 맞아 그 친구한테서 또 한 차례의 편지가 왔다.
《… 만나는 친구에게 “자네 부인도 안녕하신가?” 하고 물으면 대부분 “응, 잘 있어”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어떤 친구는 “야, 말도 마, 그 원수 아 글쎄…”하며 굳이 안 해도 될, 자기가 가장 사랑해야 할 사람 흉을 보기 시작한다.
이야말로 누워서 침 뱉기요 꼴불견이다. 어떤 경우엔 도가 지나쳐 자식들까지 싸잡아 욕하며 자기 집안 자랑인 듯 입에 거품을 문다. 정말 왜 내가 이 친구를 만나서 이런 얘기를 들어야 하나… 후회스럽고 빨리 자리를 뜨고 싶다.
이런 친구에 비하면 나는 불출이 소리를 들을 정도로 내 아내의 좋은 점만을 부각시키고 나쁜 점을 잊는다. 그것이 살아가는데 편하고, 집안이 평화롭다는 것 그리고 자기의 마음 느낌에 따라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사는 아우가 무지하게 큰집을 짓고 이사하여 집들이 파티에 가는 중에 집사람이 큰아들과 통화하는 것을 듣는다.
“작은 아빠 정말 부자네요, 그렇게 큰집이 두 채나 되니…”
이런 말을 들으면 아마 다음 같이 아들한테 말하는 부인들이 있으리라. “글쎄 말이다. 같은 뱃속에서 나왔는데 너의 아빠는 왜 이 모양 이 꼴이고, 누구는 대궐 같은 집에 살고… ”
집사람은 달랐다. 곧 아들 이름을 부르더니 이렇게 말한다. “너 진짜 부자가 누군 줄 모르는구나. 너의 아빠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부자다. 너와 네 동생 그리고 예쁜 두 며느리, 손자들… 우리처럼 부자 없다”
아들에게 네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이며 인생에서 부자의 척도가 무엇인지도 가르친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남편의 기를 살리고 사랑을 표시한 것이다.
지난 주말 그 아들한테서 3월5일 태어난 손자를 보기 위해 LA에 갔다 오는 도중에 말리부에 있는 샌타모니까 산을 등산했다. 세시간 산행 후 바람을 피하여 차 속에서 며느리가 싸준 샌드위치를 먹는데, 시장 끼도 한몫을 했지만 정말 맛이 있었다. 각자 두 쪽씩 먹는데 집사람 먹는 속도가 나보다도 훨씬 빠르다. 그 이유야 배고파서 일 것이다.
마지막 부분을 먹고 나더니 자기가 남긴 반쪽을 내민다. 아니 다 먹은 것으로 알았는데….
“왜 안 먹고 남겼어?”
“당신 배고플까 봐…”
작은 것 하나 하나에서 사랑을 받게끔 행동하는 이 여인이 옆에 있기에 나는 행복하다…》
아, 이 나이에 이런 글이 나오다니. 곧바로 답장을 썼다.
《경삼아. 네 부부가 산에서 샌드위치 나눠 먹는 장면 정말 좋았다. 널 두고 네 처와 아들이 차 속에서 나눈 `부자` 론은 더 황홀했고…(중략)… 한마디로, 멋지게 사는구나. 네 편지 받고 이 달 동창 모임부터 부부동반으로 할까 하는데, 네 글 녀석들에게 보내도 괜찮지? 네 놈은 아내 사랑도 정말 부자답게 하는 구나. 승웅》

김승웅
한국 재외동포재단
사업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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