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헤밍웨이의 집

2006-03-20 (월)
크게 작게
마이애미의 밤은 거리는 야자수가 숨 쉬면서 내뿜는 향긋함과 바다내음이 풍기는 비릿한 자연의 냄새와 그리고 휘황찬란한 가로등의 불빛이 또 다른 느낌을 주고 있었다. 친구 부부의 마중을 받으며 공항을 벗어나며 두툼한 자켓을 벗었다. 질주하는 차창 밖은 더운 공기속에 밤은 점점 깊어 가고 별빛은 더욱더 밝고 청명하게 바다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친구와의 정이란 정을 나눠주는 법과 정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며 우리 인생의 길 동무가 얼마나 삶에 기쁨이 되는지. 마이애미 친구 부부는 30여년간 사업을 하면서 크게 성공하여 얼마전 은퇴 후 마이애미 고급 동네에 세컨홈을 마련해 철새같이 뉴욕에서, 마이애미에서 1년을 반으로 갈라 낭만적인 삶을 즐기고 있다. 미네소타, 뉴욕, 워싱턴의 동창 친구 부부들을 초대해서 세밀하게 계획한 스케줄에 맞추어 펼쳐지는 하루하루가 시작되었다.
태양이 작렬하는 가운데 부서질 듯 맑은 공기 마이애미 시에서 서남쪽으로 130마일 떨어진 키웨스트를 향해 뻥 뚫린 고속도로와 길게 늘어진 도로 7마일이나 되는 다리를 달려가며 차창에 스치는 경치는 한 폭의 그림의 연속이었다. 8인승 밴에 몸들을 꽉 채우고 동요로 시작해서 팝송으로 트로트까지 네 커플이 쏟아 내는 멜로디와 얘기들은 모두가 타임머신을 타고 40여년전 시간속에 들어가 있는 듯 수많은 아름다운 추억을 수놓았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집에 도착했다. 잘 정리된 정원과 실외 수영장을 갖춘 이층집으로, 그의 애완동물이었던 6개의 발가락을 가진 수많은 고양이 후예들의 재롱이 관광객의 시선을 끈다. 1851년 해양 건축가이자 난파선 구조원인 에이사 티프트라는 사람에 의해 지어졌고 1931년 헤밍웨이의 소유가 되었다. 1961년 헤밍웨이 사망 이후, 사업가 버니스 딕슨 여사가 매입해 1968년에 국가 유적으로 채택되어 오늘날까지 딕슨 가족의 재산으로 남아있다.
그는 61년간의 생애동안 멋진 삶을 즐겼으며 소설분야에서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문학부문에서 노벨상을 타기도 했다. 그의 작업장은 그가 사용했던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그가 아끼던 타자기, 그가 모아오던 기념품들, 서적들이 모두 그대로 있다. 그 작업실에서 그는 ‘오후의 죽음’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또한 ‘킬리만자로의 눈’ 등 수많은 소설을 썼다.
가까운 곳에 있는 ‘90마일 쿠바 위령탑’을 가보았다. 키 웨스트에서 바다를 경계로 90마일 거리밖에 안 되는 쿠바에서 미국으로 헤엄쳐 밀항하다 목숨을 잃은 수많은 쿠바 인을 추모하며 세워진 위령탑을 보면서 숙연해지기도 했다. 현실을 벗어나 아름다운 정취에 빠져보는 시간이 얼마나 값 있는 시간인지. 여행이란 자연 속에서 내 삶을 음미해보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어 돌아오는 것이 아닐까.

유설자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