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뭄과 기아

2006-03-0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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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간 신문에서 아프리카 기아를 다룬 기사를 읽는다. 아프리카에 가뭄이 들어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이다. “동아프리카 가뭄이 4월까지 지속될 것 같다.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탄자니아, 부룬디를 비롯한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수백 명이 벌써 굶어 죽었고, 수만 마리의 가축들도 가뭄으로 인하여 굶어죽었다”는 뉴스이다. 유럽과 미국의 큰 구호 단체들이 수백만달러의 식량을 보냈다고 한다.
지금 이 뉴스를 읽으면서 슬픔과 분노가 동시에 생긴다. 분노의 감정을 억제하기 힘든 이유는 아프리카의 기아를 보는 나의 눈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나는 근래에 들어 가뭄과 기아의 차이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가뭄’은 비가 오지 않는 것이며, 자연현상으로서 신의 영역이다. 하지만 ‘기아’는 식량부족 현상으로 이것은 자연현상이 아니고 인간이 만든, 즉 부정한 정부로 인한 인간이 만든 재앙이다.
이같은 ‘가뭄과 기아’의 구별을 감지하게 된 것은 지난해 오클라호마에 있었던 심한 가뭄에 관한 뉴스를 읽으면서이다. 가뭄을 겪고 있는 그 지역은 통계적으로 일년 평균 51인치 정도의 비가 온다고 한다. 2005년에는 24인치 정도밖에 비가 내리지 않아 1921년 이후 가장 심한 가뭄을 겪고 있다는 뉴스이다.
미 중부에서 이처럼 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기아현상은 없다. 가뭄 때문에 영양실조로 죽었다는 사람은 없다. 유럽은 어떤가. 옛날에 유럽에서 가뭄과 기아로 사람들이 죽어갔던적이 있지만 이제는 그런 일이없다. 왜 그런가? 나의 생각으로는 좋은 정부가 바로 답이다.
잦은 아프리카 방문을 통하여 나는 아프리카 정부들의 타락과 비리를 목격한다.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 가면 권력을 잡고 있는 정부 고관들이 사용하는 수 백대의 리무진들이 있다. 수도 도시를 누비면서 돌아다니는 정부 리무진들을 보면 개스 부족은 현실 같지가 않다. 가뭄을 겪고 있는 북쪽 지방으로 가는 길은 포장조차 되어 있지 않다. 왜 정부는 길을 만들지 않는가?
열개도 넘는 국제 구호기관들이 나이로비에 본부를 두고 있다. 그런데 수도에서 몇백마일 떨어진 곳에 구호물자가 전달되지 않아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어찌 그 많은 구호기관들이 그처럼 적은 일을 하고 있는지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프리카 기아문제에 대한 해결 답안이 나에게는 없다. 자연재앙의 희생자가 좋은 정부가 있는 나라에 살든지 나쁜 정부가 있는 나라에 살든 지 관계없이 그들이 당하는 고통은 고통이다. 가뭄으로 인하여 굶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에게 구호물자를 보내 도움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서방국가들은 가뭄을 겪고 있는 나라가 자기 나라의 기아에 책임을 지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계절처럼 찾아오는 아프리카 기아와 가뭄은 놀랍지도 않는 뉴스이다. 마치 정기적으로 시간 맞추어 찾아오는 손님과 같다.
‘가뭄과 기아’의 가장 드러매틱한 예는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다. 한반도는 아주 작은 지역이다. 북쪽의 기후가 남쪽과 별다른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남과 북의 차이를 보라. 영국의 한 구호단체는 “북한에 있는 기아로 인하여 거의 4만명의 어린이들이 영양실조로 매년 죽어가고 있다”고 보고한다. 남쪽 음식점에서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음식물만으로도 배고파 죽어 가는 북한 어린이들을 충분히 먹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세상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영양부족으로 죽어 가는 것은 너무 마음 아프다. 구호물자를 보내서 돕는 것은 단기적인 해결이지만 장기적인 해결은 정부를 개혁하는 것이다.


교육학 박사·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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