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축복 받은 인생

2006-02-2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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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친구인 Mrs. 신은 우리내외를 복 받은 사람들이라고 한다. 한국인 며느리를 얻어 큰며느리는 두 아들을, 작은며느리는 두 남매를 잇따라 낳은 데다 우리가 큰 아들집에 들어 살며 작은아들을 가까이 두고 손자손녀들과 어울려 세월을 보내는 것이 그리 부럽다는 것이다.
그래서 20여 년의 지우인 Mrs.신의 처지를 잘 아는 아내는 자식들의 이야기는 가급적 피하지만 금년 새해 인사 전화에서 그녀의 목소리에는 가슴에 닿아온 슬픔이 묻어 있더라고 한다.
Mrs. 신은 우리아들 또래의 딸만 셋을 두고 있다. 중 고등학생 때부터 아는 그 집 딸들은 공부도 잘하고 효심도 깊어 Mrs. 신은 곧잘 딸들 자랑을 했다. 또 Mrs. 신은 일찌감치 딸들에게 한국인과의 결혼을 못박았다. 그러나 대학시절에 한국인 보이 프렌드를 사귀지 못한 딸들은 이민족들만이 있는 직장에 다니면서 그만 혼기를 놓친다.
사랑은 이성간에 느끼는 것이고 피부색깔이 달라도 남녀간에는 뜨거워진다. 결국 두 딸은 늦은 나이에 외국인과 결혼했지만 시기를 놓친 만혼은 불임이라는 불행을 맛본다. 그래서 Mrs. 신은 딸들의 불행을 모두 부모의 부덕 탓으로 여기며 허망해 한다.
자식들은 애물이다. 마치 밭에 곡식을 심어 애지중지 가꾸어 알찬 열매를 거두기를 바라는 농부의 마음과 같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부모의 마음에는 욕심이 따르고 순리를 거역할 때가 있다.
반면에 손자손녀들에 대한 조부모의 마음은 꽃밭에 피어있는 곱고 향기로운 꽃을 관상하는 즐거움인 것이다. 인생의 즐거움과 허망함은 인간관계의 허실에서 오고 대부분은 가족관계에서 발생한다.
인생의 유년기에서 시작하여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를 거쳐 노년기에 이르는 피할 수 없는 과정에서 순리로 살아온 인생은 여정이라 하고 역경을 밟고 살아온 삶은 역정이라고 한다면 그 어느 쪽이든 인생의 상수는 부부이다.
가장 운명적인 만남인 부부는 무덤까지 가는 동반자 관계이다. 자식을 낳아 기르고 재산을 모으고 부모형제와 균형과 조화를 꾀하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나와 너 사이에서 겪는 애증과 애환이 점철된 세월은 어느새 자식들마저 떠난 빈 둥지에 늙어 가는 부부만이 서로의 가장 소중한 보석으로 남는다.
회한의 세월 끝에 새로이 발견한 너와 나와의 실존에 대한 고독과 연민의 정을 가슴으로 하는 헌신의 사랑으로 승화시킨다.
축복 받은 인생이 무엇인지? 자식들의 성공? 돈과 명예? 모두가 인생의 훈장일 뿐이다. 진정 축복 받은 인생은 노부부가 서로에 기대어 함께 사는 것이다.


남진식/ 사이프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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