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닉슨이 정신 질환자라고?

2006-02-2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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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절반이 정신질환자였다는 뉴욕타임스의 보도는 정말 충격적이다. 그 중에도 특히 수퍼급 강심장의 주인공 닉슨마저 환자였다? 도시 믿어지지 않는다.
뉴욕타임스의 보도를 내가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바로 이 닉슨 때문이다.
미 대통령들이 공통으로 앓았던 정확한 병명은 조울증으로 알려져 있다. 조울증하면 일단 소심하고 심약한 사람이나 걸리는 병쯤으로 알아 온 내가 혹시 잘못 알았던 것 아닌가 싶어 한글 사전을 찾아 본 즉 “정신의 억울(抑鬱)과 조양(躁攘)이 단독으로 또는 번갈아 나타나는 정신병”으로 나타나 있다.
닉슨의 생전 거동을 곰곰이 추적해 본즉 그런 진단을 받을 만한 요소가 다분했던 것 같으나, 여운은 계속 남는다. 그를 과연 환자로까지 분류시켜야 옳은가? 그는 세살 때 어린이용 마차에서 떨어져 머리를 크게 다친바 있다. 그는 피로 범벅된 머리를 털며 비틀 비틀 마차를 뒤쫓아 가 기어코 다시 오른 문제아였다.
이런 근성은 그가 60년 케네디 후보와의 대결에서 분패하고, 2년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도 낙선하는 대목에 그대로 재연된다. 대통령 선거에 낙선한 인물이 주지사 선거에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동서양을 통틀어 정상인의 사고나 의식으로 볼 수 없는 일이다.
그는 그러나 6년후인 68년 대통령에 출마해 대권의 마차에 기어코 오른다. 닉슨은 어린 시절의 마차사고로 머리에 큰 상처를 입었다. 그가 죽을 때가지 올백형의 머리 스타일을 단 한차례도 흐트러뜨리지 않았던 것 역시 그 상처를 가리기 위해서였다.
그는 듀크 대학의 로스쿨에 입학 후 대학원 3년동안 단 한차례도 데이트를 하지 않았고, 졸업성적도 44명중 3등으로 나타나 있다.
2차 대전 중 해군장교로 자원입대, 솔로몬 군도에서 병참 장교로 복무했으며 그 시절 그의 주특기는 포커로, 특히 상대방의 밑돈이 딸리거나 심지가 약한 걸 파악했을 땐 자기 카드의 약세에도 불구하고 부자비한 배팅을 시도하는, 소위 블러핑에 뛰어난 노름꾼이었다.
그는 제대하자마자 거기서 딴 돈 1만 달러(60여년전의 1만달러다!)를 선거자금으로 삼아 LA지역 제 12지구 연방하원의원에 도전한다. 상대는 5선 관록의 민주당 하원의원 제리 부어히스. 닉슨은 상대를 공산주의자로 몰았다. 매카시 선풍이 미 전역을 강타하던 시기였던 만큼 닉슨의 수법은 적중했다. 연방 하원의원이라는 마차에 기어코 오른 것이다.
50년에는 상원의원에 도전, 상대인 여성 후보 헬렌 더글러스를 역시 매카시즘으로 몰아 붙여 상원의원의 마차에, 이어 아이젠하워의 러닝메이트가 되어 미합중국 부통령이라는 마차에도 성큼 오른 괴력의 사나이였다
탄핵으로 백악관을 떠나고도 그는 민주당인 클린턴 대통령 후보의 유세와 선거 전략을 배후에서 조종했고 클린턴의 대통령 취임이후까지도 새 정부의 대외정책에 관해 사실상 고문 역할을 맡았다. 그는 흡사 절에서 쫓겨난 파계승이 옛 절을 못 잊어 그리워하듯 백악관에의 집념을 결코 끊지 못했던 것 같다.
닉슨은 또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전통적인 보수주의자로, 특히 무명대학 출신인데다 동부출신이 아니라는데 대해 뼈저린 열등감에 사로잡혀 온 인물이다. 그런가 하면 그를 탄핵으로 몰아붙인 워싱턴포스트지의 평가대로 “미국 대통령으로서 그만큼 방대하고 상상력이 풍부했던 대통령도 드물었다”싶을 만큼 탁월한 지도자였다.
그는 72년 지금의 중국의 문을 제일 먼저 연 대통령이었고, 그로부터 석 달 뒤에는 모스크바를 찾아가 미소 간 최초의 전략무기제한 회담을 성사시킨 인물이다.
남과 대결해 이기기를 좋아했고 겁쟁이 소리를 제일 듣기 싫어한 사나이. 그런가 하면 그의 백악관 시절 비서실장 할데만이 회고록에 남겼듯이 “그만큼 마음이 여린 사내가 없었고, 그 여린 마음이 최대 약점”이었던 닉슨.
이 멋진 사나이더러 정신질환자라니… 닉슨에 대한 나의 충격은 결코 삭으러 들지 않는다.


김승웅
한국 재외동포재단
사업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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