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차별의 벽

2006-02-1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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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주전 한인 2세들에게 설교할 기회가 있었다. 설교 메시지는 예수님을 만난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 이야기이다.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마실 물을 달라”라는 단순한 말씀 한마디로 네 가지의 차별의 장벽들을 한꺼번에 허물어뜨려 세상을 바꾸셨다.
첫번째 허물어뜨린 벽은 남녀간의 차별 벽이었다. 낯선 남자가 여자에게 말을 걸었던 것이다. 두번째 허물어뜨린 벽은 종교의 벽이다. 성전에서 예배하는 유대인인 예수님은 산에서 예배하는 다른 종교를 믿는 여자와 대화하셨다. 세번째 무너뜨린 벽은 계층의 벽이다. 양반이셨던 예수님은 소외당한 천한 여자와 대화를 하셨던 것이다.
네번째 허물어뜨린 벽이 인종차별의 벽이다. 예수님은 혼혈인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을 걸었다.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세상 어느 종족보다도 싫어하며 무시하는 이유는 그들의 피가 다른 족속들과 섞인 혼혈이기 때문이었다.
단일혈통을 자랑하는 유대인들은 자기 조상이 야곱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순수함을 자랑하였는데 사마리아 사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였다. 예수님이 태어나기 500여년전에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아시리아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웃 나라 사람들과 함께 살도록 강제적으로 섞어버렸다.
이와 같은 당시 시대상황을 10대들에게 설명하면서 나는 먼 기억속에 오래전에 입력된 한국말 ‘튀기’라는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단어를 끄집어내어 설명하였다. 사마리아는 ‘튀기’들의 나라이고 그래서 순수한 혈통을 자랑하는 유대인들은 그들을 멸시하고 구박하였다.
예배가 끝난 후 초청해준 영어부 전도사는 그날 교회 출석 숫자가 적어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수퍼보울 주일임을 그에게 상기시켜 주었다. 정기적으로 예배에 참석하는 어른들 중에도 수퍼보울 주일은 교회를 빠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젊은 청년들은 오죽하겠는가 하며 나의 아들도 수퍼보울을 보고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그를 위로하였다.
다음날 아침 한국 신문을 펼치자 1면에 게재된 헤드라인이 수퍼보울 기사라서 나의 관심을 끌었다. 나는 속으로 “이상하다. 미국 축구에 관한 기사가 한국 신문에 이처럼 크게 보도되다니” 하면서 기사를 주의 깊게 읽었다. 이번 수퍼보울 게임에서 가장 귀중한 선수(MVP)가 ‘한국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축구광인 뉴욕에 사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하인스워드가 한국사람이라는 것을 너는 아니?”하고 물었다. 아들은 놀라면서 “농담이지요? 나는 몰랐어요”라며, 혼혈인 나의 아들은 워드가 흑인이라고 생각하였다고 말하였다.
워드에 관한 기사를 읽어보니 한인들의 관심이 미국 축구에 관한 것이 아니라 한국사람 프라이드라는 것이 역력하였다. “약에 윌리 파커가 MVP 우승을 하였다면 한국사람들에게 관심이 있었을까? 황우석이 세계 최고라는 자랑스런 자리에서 내려오자마자 그 자리에 워드를 ‘한국인 최초로 승리한 MVP 선수’라고 갈채를 보내며 올려놓았다. 국제 무대에서 ‘최고’라는 자리를 차지하는 개인들을 그처럼 열광적으로 숭배하는 한국사람들의 심리속에 무엇이 있을까?
나는 워드가 한국에서 태어났을 즈음에 한국에서 살았다. 1976년 한국에서 워드 같은 장래의 MVP 흑인 혼혈아들이 많이 태어났다. 대부분의 그들은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음지에서 살았고 많은 혼혈아들이 서양으로 양자로 보내졌다.
30년이 지난 지금 워드를 한국사람이라며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한국사람들의 또 다른 영웅 만들기가 아닐까? 아니면 한국사람들이 예수님처럼 혼혈인들을 완전히 받아들여 차별의 벽을 무너뜨린 것인가? 또 하나의 한국인 프라이드를 세워주는 영웅 숭배가 아니길 바란다.


교육학 박사·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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