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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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메디치

2006-02-0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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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문화의 세기다. 한 국가가 지닌 문화의 힘은 그 국가의 국력과 직결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나라들이 문화예술을 지원하고 기업들은 메세나 마케팅이라 불리는 문화 마케팅으로 엄청난 파급효과와 효용을 불러일으켜 마케팅 시장의 뉴 패러다임을 형성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학문과 예술에 대한 전폭적 지지를 아끼지 않았던 이탈리아 도시국가 피렌체의 메디치가는 부와 권력을 가진 가문을 넘어 예술 후원의 예를 대표할 만한 문화 코드가 아닐까 싶다.
전 유럽에 메디치 은행을 설립했으며 신흥 상인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피렌체 공화국을 지배했던 메디치가는 인문주의의 정점 르네상스를 이끈 위대한 가문으로 우리에게 기억되며 예술가들에 대한 후원으로 몇 세기 동안의 예술을 빛낼 만큼 중요한 업적을 쌓았다.
동시대 인물인 마키아벨리가 간파했듯이 부와 권력 융합의 대표적인 모델인 메디치가가 인문주의와 예술을 후원하지 않았다면 그저 흥망성쇠를 거친 다른 권력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역사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 수많은 천재들이 주도한 르네상스, 이들 뒤에는 관대한 후원자 메디치가가 있었고 당대 미술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에 메디치 가문의 흔적을 남김으로써 그들의 후원에 화답하였다. 이곳 미 주류사회도 로마의 정치가 가이우스 메세나로부터 시작되어 메디치에서 꽃피운 예술 후원의 전통은 록펠러, 구겐하임, 게티 등 기업들의 문화활동 지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한인사회의 경우 민간부분 후원이 적고 예술분야 시장규모가 매우 작은 편이기 때문에 예술인들이 작품활동만으로는 생활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른바 이미 유명세를 탄 블루칩 예술가이거나 혹은 작가가 충분한 시장가치를 갖고 돌아왔을 때 관심을 갖고 인정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작가들에게 애정 어린 후원자는 작가가 클 수 있는 결정적 기회를 제공한다. 전시를 기획하다 보면 중요한 시기에 결정적 이벤트를 치러내야 할 예술가가 변변한 후원자를 찾지 못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을 볼 때, 혹은 어렵게 자신의 예술 세계를 총체적으로 검증 받을 만한 전시를 마련한 후 관객들의 무관심으로 낙담하게 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니다.
이제 우리 한인사회도 문화예술을 도울 수 있는 역량이나 처지에 있는 기업가들이 많이 있으며 직접적 기업 이미지 만들기보다는 ‘문화예술 후원’이라는 감성코드를 활용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기업 이미지를 생각할 때이다. 물론 기업과 작가 그리고 관객 모두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예술 후원에 관객들의 관심과 참여는 필수이다.
러시아에서는 환경미화원도 1년에 한번은 볼쇼이 극장 공연을 간다고 할만큼 문화가 생활의 일부로 여겨지고 있다니 문화를 여유 있는 사람의 사치쯤으로 치부하는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하겠다.
새해가 되면 많은 이들이 운동, 금연, 금주, 건강 챙기기 등 새로운 결심을 한다. 풍요한 삶에 대한 욕구와 여가시간의 증대에 따라 문화예술에 대한 수요가 다양화되고 물질적 풍요보다는 정신적인 만족을 더 높은 가치로 생각하는 요즘 한인 사업가들도 ‘비즈니스와 감성의 융합’이라는 새로운 예술 후원 마케팅을 실천하고 우리 보통사람들은 새해의 결심 목록에 ‘가족과 함께 전시장이나 공연 관람하기’를 더한다면 좀더 우리의 삶이 살만해지리라 생각해 본다.


메이 정
앤드루 샤이어
갤러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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