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건너집의 불빛

2006-02-0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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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상을 알리는 알람시계가 울리면 나는 고단함을 누르고 졸린 눈을 부비면서 새벽잠에서 깨어나 부지런히 잠옷을 갈아입고 아래층 부엌으로 내려가 건너집 창문을 바라보며 물한컵을 마시는 일로 바쁜 하루를 시작 한다.
도시가 잠들어 있는 시간, 어느새 어둠을 밝히고 있는 건너집 창문의 환한 불빛은 벌써 저 집에도 나처럼 누군가가 일어나 조용한 아침을 시작 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불빛이다. 꿈꿀 힘이 없는자는 살아갈 자격이 없다고 했다. 저 불빛은 꿈을 가지고 인생을 적극적으로 개척해 가려는 의욕의 빛이다. 그 빛은 새벽 잠을 즐기며 살지못하는 삶이 고단한 사람들에게 힘과 위안을 주며 활기찬 아침을 준비하게 하는 빛이다.
간혹 불빛이 없는 캄캄한 건너집의 창문을 보는 날이면 일면식도 없는 건너집 안부가 궁금해진다. 무슨일이 있나, 몸이 아픈 것일까? 고만 늦잠을 자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여행중인가? 같은 처지라는 일체감에서 오는 생활 탓일까 나의 일방적인 관심에서 걱정스런 독백이 절로 나온다.
내가 사는 지역은 특별히 가난할 것도 넉넉할것도 없는 평범한 주택가에 아파트들이 숲처럼 밀집 되어 있는 동네이다. 서로서로 이웃하여 살고 있기는 하나 저마다 바쁜 생활이라 심정적 교류가 없이 지내다 보니 자연 건너집 역시 창문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집안내력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바가 없다. 가끔씩 주말이면 담을 넘어 들려오는 이상한 음악소리나, 낯선 말소리로 보아 나처럼 이민 바람에 날려 민들레 홀씨처럼 이 미국땅에 내려 앉아 세월을 살아 가면서 민들레 습성을 따라 이 땅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애를 쓰며 사는 이민자의 가정이라는 것만을 알 뿐이다.
이민자들은 저마다 사연을 안고 고국을 떠나 문화와 언어, 물이 다른 이 낯선 거대한 미국땅에서 낙오 되지 않고 잘 살아 보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두눈을 부릅뜨고 살아가기에 늘 정신은 팽팽한 활시위처럼 긴장해 있고 마음에 여유 없는 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 피곤으로 지쳐 잠을 실컷 자보는 것이 간절한 소망중의 하나이다.
삶을 이어가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일을 가며 힘겹게 사는 이민자들에게 울지 않고 그래도 꿋꿋히 살아갈 튼튼한 생명력을 주는 것은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또 보이게, 보이지 않게 힘을 보태주는 도움과 은혜가 있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의 도움 없이 자수성가 했노라고 뽐내는 사람들의 성공담을 듣는 기회가 있다. 과연 그들은 그들은 말처럼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닌 얽히고 설킨 인간관계의 사회 속에서 티끌 만치도 타인의 도움 받음 없이 성공을 이루어 낸 재주는 무엇일까 하는 믿음이 가지않은 의문을 남기게 한다. 겉으로 드러내는 도움만이 도움의 전부이요, 보여지는 것만이 가치로운 도움이라는 무지에 빠져 서로서로 은혜를 끼치며 사는 아름다운 세상의 이치를 부정 하는 속셈을 보는 것 같아 그들의 자수성가 성공담 이야기는 공허 하게만 들린다.
사람들이나, 자연, 사물, 어느 것 하나 나와 상관 없는 것들은 이 우주에 존재 하지 않는다. 서로 같이 살아가는 은혜로 살아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서로를 의지 하고, 상부상조 하며 서로에게 은혜를 끼치며 살게 되어 있는 것, 그것이 인간이며 인생이다.
이른 새벽, 건너집 불밝힌 창의 불빛은 내 고단한 삶에 외로움을 덜어주며 위안을 주고 활기찬 힘을 솟게 하는 은혜를 끼쳐준다. 침묵의 불빛으로 서로의 존재, 생존을 알릴 수 있는 이웃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오늘도 이 고마운 마음을 안고 도심의 출근길에 나도 일원이 되어 출근 행렬에 끼어들 것이다. 내일의 결실을 위한 약속이 되는 것을 마음에 새기며 오늘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다시 다짐하면서---


김영중
미주 한인 크리스천
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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