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연의 리듬대로 살자

2006-02-0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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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연의 리듬에 따라 살도록 창조되었다. 우리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자연섭리의 리듬에 따라 살아야 건강하다는 뜻이다. 우리가 숨쉬고 소화하며, 심장의 피가 온 몸을 돌며 산소와 영양을 공급하고 노폐물을 운반하는 순환작용은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게 창조된 것이다.
창조주는 사람에게 부여한 자유의 남용으로 몸을 해칠까봐 호흡, 소화, 혈액, 순환 등의 주요기관을 몸이 스스로 조절하는 자율신경을 심어놓았다. 우리의 욕심이 지나칠 경우 그 흥분을 담당하는 교감신경과 이를 억제하고 신체의 안정과 면역력을 향상하는 부교감신경을 심어 놓았다. 이렇게 두 자율신경이 스스로 우리의 몸과 마음의 균형을 유지시키는 길항작용을 하게 한 것은 하나님이 사람의 건강을 염려할 만큼 직접적으로 사랑한다는 한 증거라 믿는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자연 리듬에 무심한 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이민자들은 대부분 밤낮의 구별 없이 무리한 노동이나, 정신적 부담으로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불규칙하게 살고 있다. 자연의 리듬을 이탈하면 몸이 망가지는데도 우리는 무심코 그런 생활을 되풀이한다.
오늘날 질병의 주범은 스트레스라는 사실이다. 스트레스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지치게 만든다. 스트레스는 교감신경의 긴장을 낳고 긴장이 지속되면 부교감신경의 면역기능인 림프구가 감소되고 면역이 극도로 억제된 상태에서 암 같은 불치병이 발생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몸 안에는 매일 약 100만개의 암세포가 생겼다가 림프구의 면역 활동 때문에 죽어간다고 한다. 림프구의 자연 면역력 향상이 얼마나 중요한가? 더 살아야할 나이의 친지들이 우리 곁을 떠나가는 슬픈 현상에 충격 받고 나의 면역력 향상 체험의 몇 가지를 적는다.
첫째, 스트레스의 파도를 즐기며 타자. 매일3회 이상 심호흡하며 마음을 안정시키자. QT, 행공, 기공, 단전, 참선, 최면 중 어느 기법이든 사용해 스트레스를 쉽게 넘길 수 있다.
둘째, 발상을 전환하자. 소중한 사람이 중병에 걸렸거나 세상을 떠나는 경우에 느껴지는 슬픔은 격렬한 흥분이다. 어떤 경우에든 격한 감정에 편중되지 말고 창조주의 뜻에 맡기는 믿음으로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길러야 한다. 3초를 웃으면 3일을 더 산다는 연구가 있다.
셋째, 약물의 중독을 피하자. 수면제, 소염진통제, 스테로이드 제제 등을 장기간 복용하면 면역력을 소모시킨다. 그런 치료도 삼가 하자. 대신 대체의학 등의 자연 면역력 향상에 눈을 뜨자.
넷째, 혈액 순환을 향상시키자. 차가운 음료수나 냉방시설 사무실에 너무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자. 운동하거나 냉온 냉탕을 하면서 몸을 따뜻하게 하여 혈액이 잘 순환되게 하자. 장기의 림프조직이 차가워지면 면역 기능이 약해져 질병에 걸리기 쉽다.
다섯째, 나이에 맞게 운동하자. 사람은 직립보행 체질이라 아내와 손잡고 7,000보 이상 산책하면 근육과 사랑의 일거양득이다. 등뼈와 배의 근육운동도 필요하다. 튼튼한 근육은 지방질을 잘 태운다.
여섯째, 식생활에 유의하자. 에너지 자원은 식생활이다. 특히 면역력을 늘리는 현미 버섯 마늘 야채 등을 많이 섭취하고 음식물이 소화 배설되는 과정이 확실하게 지켜지도록 노력하자.
우리가 흥분과 휴식의 적절한 교체와 창조주를 경외하는 생활방식이 자연의 리듬을 따라 사는 것이다. 그게 하나님이 바라는 건강과 천수를 누리는 길이라 확신한다.

백남준 선생을 추모하며



입력시간 : 2006-02-01


강익중(설치작가)
백남준 선생님께서 타계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젯밤 피닉스에서 뉴욕으로 오는 비행기에 막 오르기 전이다. 자리에서 눈을 감고 잠을 청할수록 백선생과의 인연의 기억이 더욱 또렷해진다.
1994년 선생님과 커네티컷 휘트니 미술관에서의 2인전 준비를 하면서 생긴 일이다. 당시 독일 뒤셀도르프에 계셨던 선생은 휘트니 미술관으로 팩스를 보내 주셨다. 단 두 줄의 문장이 담긴 간단한 내용이었다. ‘나는 괜찮다. 강익중이 좋은 자리를 얻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I am very flexible. It is very important that Ik-Joong has the better space.’)
작년 말 백선생의 후원자이자 오랜 친구인 칼 솔웨이를 신시네티에서 만났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던 솔웨이의 부인은 선생님 얘기가나오자 눈에 눈물이 가득하다. 주변 사람들이 편찮으신 선생님을 너무 소흘히 대하는 게 아니냐고 분개하자 솔웨이는 그렇지 않다며 부인을 다독거린다.
선생님의 여행 가방에는 내의 몇 장과 책이 가득한 정말 욕심 없는 천재였다고 솔웨이 부부는 말한다. 칠성신을 모시는 제주 무당이 칠성 사이다 한 병만을 놓고 굿판을 벌였다는 얘기를 들
었다.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라 생각하는 무당에게는 형식이나 절차는 중요하지 않다.
비빔밥도 만드는 사람의 형편과 계절에 따라 들어가는 재료가 달라진다. 밥 한 그릇에 잘 익은 고추장만 있으면 어느 것과 어우러져도 맛있는 비빔밥이 된다. 우리 미술이 지니고 있는 힘이 바로 이 백남준 선생님이 말씀하신 ‘유연성’ 이다. 그 유연성이 바로 세계의 중심에 서있는 한국 작가 백남준을 만든 것이다.
언젠가 선생을 모시고 금융 계통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월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세한 변화들을 깊이 있게 말하자 모두들 신기해한다. 그러다 ‘30세기에는 세상이 이렇게 변할 거야’라는 말에 모인 사람들이 번쩍 깨어났다. 그리고는 아이와 같이 씩 웃으시는 맑은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낮에도 별을 보는 분이구나라고 그냥 혼자 생각했다.
“창조가 없는 불확실성은 있지만 불확실성이 없는 창조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청년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주려고 이 전람회를 끌어온 것이 아니다. 청년들에게 무슨 음식이나 깨뜨려 먹는 강한 이빨을 주려고 이 고생스런 쇼를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 전
시를 기념해 국내 언론에 보낸 백남준 선생의 기고문 중)
설날 오후 백남준 선생은 마이애미의 아파트에서 74년의 삶을 마치셨다. 선생님이 남기신 생각과 흔적들은 이제 스스로가 별이 되어 세계 미술사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특히 그분이 어린 나에게 주신, 깊은 선생님 사랑은 앞으로 내내 잊지 못할 것이다.

정호영 로드랜드대 총장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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