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사람에게 가장 가까운 동물이다. 그런 이유 중에 하나는 주인을 알아보는 충직성 때문이다. 한번 마음을 주어서 친해지고 나면 몇달이 지난후에라도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문 앞에 나가 꼬리를 친다. 반대로 처음에 잘못 사귀어 놓으면 몇년이 자나도 으르렁대고 마음을 주지 않는 것이 견공이다.
개가 사람과 친해질 수 있는 이유 중 또 하나는 식성이 거의 사람과 비슷하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개 먹이가 별도로 판매되지만 한국에서는 사람과 같은 요리를 먹거나 찌꺼기를 처리해 준다. 그래서 고기 맛도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보신탕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애견가가 들으면 기절할 노릇이다.
미국 사람들의 개 사랑은 유난스럽다. 유산까지 상속하고 보모까지 고용한다. 남편을 갈아치우고 재혼을 해도 개는 데리고 간다. 그만큼 외롭기 때문일까?
2005년도 통계에 의하면 맨해튼 거주민 중에 독신 세대가 절반이 넘어선다고 한다. 인간은 사랑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랑할 대상이 있어야 한다. ‘사랑을 주고받는 것’은 사람의 본성이다. 주기만 하는 것도 슬퍼질 때가 있다. ‘확실한 리턴’은 오히려 사람보다도 개가 분명하다. 사람은 배신하고 실망시키지만 개는 그런 단어를 알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개가 얼마나 사람보다 훌륭한지는 개를 길러 본 사람만 안다. “개 같은 ד는 오히려 욕이 아니라 칭찬이다. 개만큼만 신의를 지키면 충신열사로 칭해야 한다. 사람에게 실망하고 배신당해본 사람은 무슨 뜻인지 안다.
친구 중에 독신남 C는 ‘코코’라는 이름의 요크셔 테리어와 같이 사는데, 그가 항상 서둘러 귀가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하루 종일 자기의 발자국 소리를 기다리는 코코 때문이다. 지방 출장을 가는 경우에도 코코를 항상 동반한다. 하루종일 바쁜 일과가 끝난 후 누군가가 자기를 기다리고 누군가를 위해서 통조림을 쇼핑한다는 것은 행복한 일 아닌가?
지난 성탄절 무렵에 아주 특별한 예배 장면을 봤다. ‘개들에게 축복을’(‘Blessing for Animal’)이라는 집회가 맨해튼센트럴 처치에서 열렸었다. 그날 오후 한인예배가 끝나고 해가 저물었는데 갑자기 개들이, 개들을 안은 사람들이 예배당 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커다란 에스키모 개, 영국 그레이 하운드는 걸어서 들어오고 치와와, 요크셔 테리어는 귀부인들 품에 안겨서 예배석에 앉았다. NYPD 소속 셰퍼드는 파트너 경찰과 함께 2층 맨 뒤 지정석에 마치 장로처럼 점잖게 미동도하지 않고 자리잡았다. 교회생활 50년에 처음 보는 장면이라 이해가 안되고 어색해서 전혀 끝가지 볼 마음이 없어서 나는 그냥 집으로 와 버렸다.
“아니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람. 교회에 개가 들어오다니” 집에 와서들고 온 프로그램을 보니 재미있다. 목사님이 성경말씀을 봉독하고 사람들은 찬송가를 부른다. 생 상의 ‘동물사육제’ 중 한 곡을 소프라노가 특송을 하고, 다양한 음악순서도있다. 맨 마지막에는 교역자들이 개들 각각에게 축복기도를 해주는데 개가 순한지 낯을 가리는지 미리 말해주어야 한다는 주의문이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나의 고정관념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의 축복은 인간만의 독점물이 될 수는 없다. 개들도 당연히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이유가 있다. 문제는 그 축복권 밖에 있는 ‘×만도 못한’사람들이다.
정재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