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강금실과 힐러리의 닮은 점

2006-01-2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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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챙이 변호사 닉슨이 가난뱅이 여교사 패트를 만나 자기 아내로 삼는 과정을 볼라치면 아무리 미국이라지만 너무 우악스럽다. 둘의 첫 대면 장소는 LA 근교 위티어의 연극동우회. 연극이 파한 후 패트를 집에 대려다 주며 닉슨이 차 속에서 말을 건다.
“당신하고 데이트를 하고 싶소” “어머, 저는 바쁜 몸이에요” 닉슨이 보기 좋게 딱지를 맞는다.
두 번째 대려다 주는 날에도 같은 주문을 했다. 결과는 역시 퇴짜. 세 번째 날 닉슨은 아예 탁 까놓고 “나, 당신과 결혼하겠소”라 밝힌다. 그로부터 2년 후 여인은 이 저돌적인 변호사에게 끼워줄 결혼반지를 장만하느라 저금통을 날린다.
닉슨은 워터게이트로 대통령직을 사임하면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독종’ 대통령이다. 허나 아내의 장례식에서 그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고, 이 장면을 지금부터 10여년전 워싱턴에서 TV를 통해 지켜보며 나는 아내를 제대로 고를 줄 알았던 닉슨의 심안에 새삼 탄복했다.
이 닉슨도 그러나 클린턴의 아내 힐러리한테만은 손을 내저었다. 미 정가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지만, 닉슨은 클린턴이 대권후보였던 시절 그의 멘토 역할을 했다. 대신 힐러리가 남편의 대선 유세 전면에 나서는 건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였는데, 닉슨은 그 정도로 힐러리를 싫어했다. 닉슨은 힐러리를 배척하는 이유로 프랑스 절대왕조의 명재상 리슐리에의 ‘명언’을 그대로 인용, “여성의 지모(智謀)는 대사를 망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요즘 서울에선 여성 법무장관 출신 강금실씨의 서울시장 출마설이 조그마하게, 그러나 실제로는 육중한 뉴스로 다뤄지고 있다. 그 뉴스를 접할 때마다 불쑥 불쑥 닉슨에 얽힌 고사가 떠오르니 이상하다. 그녀가 출마를 굳힐 경우 당선은 따 놓은 당상으로 보는 것이 서울 정가 일각의 시각이다. 또 당선될 경우 그녀의 향후 입지는 지금 뉴욕 주 연방상원의원 힐러리의 입지와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으로 예견하는 분석도 유력하다.
따지고 보면 이 힐러리의 변신을 제일 먼저 예견한 인물이 바로 닉슨이었다. 귀신이 귀신을 알아보듯, 또 첫 눈에 아내 감을 고르듯, 닉슨은 그 영험한 눈을 살려 오늘의 힐러리 위력과 변신을 대번에 예견했다는 얘기가 되는데, 따지고 보면 둘은 정치적으로는 가장 의기투합했지만 권력을 함께 호흡하기에는 지극히 배타적일 수밖에 없던 관계, 마치 음악도가 베토벤의 음악에 심취는 할망정 그와 함께 살아 보라 주문 받았을 때 내보인 반응과 흡사했던 것이 아닐까 풀이된다.
약간의 비약을 전제로 말한다면 지금의 강금실씨 풍모에서 나는 힐러리적인 요소를 다분히 발견한다. 우선 둘 다 변호사라는 고난도 직업여성 출신이면서도 부드럽고, 그런가 하면 역경을 맞아 남자 뺨칠 정도의 당차고 싸늘한 침착성도 함께 나눠 가졌다는 점이 첫 번째다.
두 번째는 둘 다 상당히 예쁘게 생겼다는 점인데, 얼굴뿐 아니라 말도 예뻐 더 돋보인다. 솔직히 말해서 요즘 서울의 정치인들 왜 그리 밉게 생겼는지, 하는 짓도 밉지만 미운 얼굴도 정말 많다. 그렇다고 지금 우리 정치 풍토에서 강금실의 등장을 대놓고 예견할, 앞서 닉슨 같은 대사(大蛇)급 정치가를 기대하기란 무리일지 모른다. 허나 한가지 신비한 건, 강금실이라는 이름이 거론되는 지금이 일련의 세계 여성지도자의 잇단 부상과 때를 같이 한다는 점이다.
연초 앙겔라 메르켈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가 워싱턴과 모스크바에 차례로 나타나 여풍당당을 과시했는가 하면 칠레의 미첼 바첼레 여성 대통령 당선자는 오는 3월11일의 조각 겸 취임식 때 “남녀 동수의 장관을 두겠다”고 역시 여권의 기염을 토한 것도 신비하다. 미국 안에서 부시 대통령의 부인 로라가 하필이면 이 때를 골라 흑인 여성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여성 대통령이 돼 달라고 주문한 것도 신비하기는 매한가지다.
내가 정작 궁금한 건 강금실이 알게 모르게 몰고 다니는 신비의 정체다. 어디서 오는 신비일까. 곰곰이 짚어본 즉 평소 영계와 접한 듯한 그녀 특유의 아름다운 얼굴에서 오는 것 같다.


김승웅
한국 재외동포재단
사업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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