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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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무늬

2006-01-2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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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희 지음

깊은 사유 끝에 길어 올린 인생론

‘한국 여성이 빚어낼 수 있는 가장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언어의 비창’이라는 찬사 속에 박완서와 함께 한국 최고의 여성 소설가로 자리매김한 저자가 오랜 침묵을 깨고 펴낸 신작 산문집이다.
내면 지향적 주제 의식과 문체 미학으로 신경숙, 전경린, 조경란, 하성란, 공지영 등 후배 소설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쳐온 저자는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오정희’는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이자, 넘어야 할 높은 고개였다.
철두철미 소설로만 존재하기를, 소설로만 살기를 꿈꾸는 완벽한 소설주의자가 산문집을 냈다는 것이 화제이며, 사생활을 드러내기 싫어하는 이가 처음으로 자신의 속내를 솔직하게 내보이는 것 자체가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작가는 글쓰기만이 자신의 남루한 삶을 구원해주리라는 기대와 희망에 한껏 들떠 있었던 문학소녀 시절,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하느라 정신없으면서도 시간을 쪼개 창작에 매달렸던 삼십대,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다시 얻게 된 자유와 고독 사이에서 방황한 중년 이후의 삶을 섬세하고도 담백하게 펼쳐낸다.
예순을 바라보는 저자는 자신에 대한 엄격한 시선을 거두고 이순(耳順)이라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순리대로 이해하여 ‘이제는 거울 앞에 선 누님’처럼 담담하게 지난날을 관조하면서 인생이란 무엇인가,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그리고 독자들에게 넌지시 되묻는다.
작가의 문학적 비밀을 보여주는 자전인 동시에 지난한 삶의 여정을 반추케 하는 탁월한 인생론으로 독자로 하여금 완벽하고 정갈한 문장을 읽는 말할 수 없는 즐거움과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아온 그의 정신세계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한다.
깊은 사유 끝에 길어 올린 정확한 언어로 한 땀씩 아름답게 수놓은 문장들은 읽는 이의 마음마저도 깨끗하고 단정하게 정돈하며 또한 삶의 겸허와 그 경이로움을 새삼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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